얼마 전 우리 집에서 반상회를 했다. 처음 방문하는 집은 늘 호기심으로 보게 마련인데 거실 벽면에 놓인 책장에 관심을 보였다.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책상과 의자를 보더니만 "이 집은 뭔가 다르네요"라고 듣기 좋은 인사를 보내왔다.
필자는 물건들이 이곳에 있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해줬다. 독서지도사로 활동한 지 10년 됐다고 소개했다. 필자는 자녀교육에 있어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서두로 엄마들의 질문에 답했다. 특히 거실문화와 아빠들의 자녀교육 참여가 아이들의 인성과 학습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강조했다.
잠시 뒤 들어왔던 두 엄마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사는 이웃사촌이란다. 편의상 두 사람을 A와 B로 지칭하련다. A에게서 자녀교육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남편은 일명 '리모컨맨'이라고 할 만큼 집에서의 여가시간은 텔레비전 앞에서 보낸다는 것. 거실을 서재로 바꿔보자는 운동에 동참하고자 남편에게 권유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일터에서 스트레스받고 온 가장이 집안에서까지 제재를 받아야 되겠느냐며 거실에서 TV를 보는 즐거움마저 빼앗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A의 남편 말도 일리는 있다. 경제적 활동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동반하기에 내일 일터로 나가려면 휴식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A는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자녀교육을 위해 리모컨맨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역력했다.
B의 남편은 A의 남편과 정반대였다. 남편이 먼저 거실 환경을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 한쪽 벽면은 책으로 가득 채우고 거실엔 좌탁을 놓아둬 자녀와 함께 책과 신문을 읽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자녀들 학습 도우미 역할까지 도맡아 식물 관찰과 곤충 관찰, 운동까지 자녀들과 함께하니 B로서는 여간 편하지 않다고 했다. TV는 정해진 시간에 가족 전체가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보고 있다니, 필자 또한 부럽기 짝이 없었다.
B가 물었다. "우리 큰 애가 5학년인데 전 과목에서 2개 틀리면 잘하는 거 아니죠?" 이 정도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잘 이뤄지고 있는데 공연한 걱정을 하고 있다. 어쩌면 긍정적인 대답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얼굴 표정을 살펴보았다. 이미 정보를 알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A에겐 조급함을, B에게선 여유로움이 보였다. A가 이렇게 말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우리 집 현관문에 붙였는데 그 기운이 B네로 가버린 것 같아." 이 말에 서로들 웃었지만 A의 속내는 부러움과 더불어 속상할 것 같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엄마들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교육의 참의미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주변에 아빠의 적극적인 교육 참여로 자녀의 인성과 학습에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걸 봐왔다. 밖에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평소 자녀교육에 소홀히 하다가 어느 날, 결과물을 두고 흥분만 한다면 가족 구성원에게 소외되기 십상이다. 어떤 결과물은 과정의 결실이다. 착색이 잘 된 사과는 먹음직스럽고 상품의 가치도 높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선 여러 차례의 손길이 필요하다. 오늘은 햇빛에 왼쪽을 보여주고 내일은 오른쪽을 보여주는 일을 반복해야만 사과농장 주인은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자녀교육도 과정이 중요한데 흔히들 결과물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번 기회에 거실에서 교육의 몫은 엄마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보면 어떨까. 볕 좋고 바람 좋은 날, 가족 모두 합심해서 거실을 서재로 바꾼다면 가족애가 한층 좋아질 것 같다. "아빠, 리모컨맨에서 탈출하세요."
장남희(운암고 2학년 임유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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