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부터 乳母(유모)제도가 있었다. 왕족이나 귀족, 명망가 등을 중심으로 모유가 부족한 경우는 물론 신분 과시용으로서도 유모제도가 애용됐다. 우리 역사에서도 왕실 유모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유모를 '奉保夫人(봉보부인)'에 책봉했는데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지 17년 되던 해 자신의 유모인 백씨를 종1품 '봉보부인'에 책봉한 것이 시초라 한다. 성종의 경우 특히 유모를 많이 따라 봉보부인에 책봉했을 뿐 아니라 유모의 남편과 아들에게도 관직을 주고 집 지을 재목을 하사하는 등 특별대우를 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단종이나 연산군 등도 유모를 매우 따랐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유모는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직업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중국 공산당 등장 이후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근절시켜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적으로 유모 육아가 자취를 감춘 데는 젖병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일하는 여성들이 대거 늘면서 우유가 모유를 대신하게 됐다. 말하자면 젖병이 유모 역할을 하게 된 셈이랄까.
그런데 최근 중국 사회에서 난데없이 유모가 신종 직업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멜라민 분유' 파문으로 4명의 아기가 죽고 피해 영'유아가 5만3천여 명에 이르는 등 분유 불신이 극도로 높아진 가운데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젖을 판다"는 이색 광고가 나왔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사는 32세의 한 주부가 자신의 아들에게 먹이고 남는 모유를 하루에 300위안(약 5만 원)씩 받고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 뜨거운 찬반 논란에도 불구, 그 여성은 자신의 월급 1천 위안(약 16만 원)에 비해 젖을 팔면 12배인 1만2천 위안(약 200만 원)까지 수입이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다.
유모 희망자들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유모 알선업체들도 급증하는 모양이다. 업체 측에서는 남편의 동의 여부를 알기 위해 면접 동참을 요구하거나 모유의 품질(?)을 가려내기 위한 방편으로 각자의 아기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하긴 중국발 멜라민 분유 소동이 우리 국내에도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분위기다. 세월 따라 자취를 감췄던 '유모'가 다시 등장한 걸 보면 역시 돌고 도는 세상사인가 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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