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천리마 감별법

수험생들 대학진로 놓고 고심/평생투자할 분야 택해 선택을

千里馬(천리마)는 한 번에 천 리나 내달린다. 그런데 그 천리마를 여느 말처럼 먹여서는 천 리를 갈 수가 없다. 그걸 알아보고 대우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주나라 伯樂(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보고 잘 다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백락이 있고 난 뒤에야 천리마가 있다고 韓愈(한유)는 말했다.

수능도 끝나고 본격 대학 입시철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저마다 대학과 학과 선택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그들의 대학 선택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직업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20대 태반이 백수인 시대에, 취업 때문에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이 수두룩한 판에 대학 선택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입시철이면 모두가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더구나 이제 막 대학 문을 두드리는 약관의 수험생들이 꿈을 갖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러나 소질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지개를 좇는 것이다. 거기에다 꿈을 실현시켜 줄 투자조차도 않으면서 꿈만 꾸고 있다면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저께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1천5명이 발표됐다. 어느 누군들 수고하지 않고 영광을 안았겠느냐만 특히 35세 정영미 씨의 이야기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주경야독과 독학,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가 합격이라는 과실을 맺은 것이다.

인문계 고교 교장인 친구에게 "학생들에게 어떤 조건으로 대학을 선택하게 지도하느냐?"고 물었더니 "무엇보다 취미와 적성에 맞추라고 권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평소 실력보다 훨씬 좋은 수능 성적표를 받은 학생이 점수에 따라 대학에 입학한 사례를 얘기했다. 그 학생은 동기들이 모두 자격시험에 합격하거나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는 동안에도 서른이 넘도록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과 대학 선택이 맞물려 있다면 적어도 10년 앞을 내다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금 선망의 대상인 공무원이나 신도 부러워한다는 공공기관 직원, 여당 국회의원의 물의 발언으로 새삼 확인된 교사 같은 직업들이 인기를 얻은 것은 오래지 않다. 세상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근래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간 직업들이 있듯 현재는 인기 있는 직업들도 부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직업에 관한 한 우리는 二重(이중)의 잣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입시철이면 유별 느끼는 개인적 소회이긴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특정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봉건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음도 대학 입시철이면 확인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최근 대구 수성구청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미화원 17명을 채용하는 데 412명이 지원했고 이 중 144명이 대졸 이상 학력이었다고 한다. 합격자 중에 8명이 대졸자였다. 구청 담당자는 환경미화원의 근무환경이 좋아지고 직업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일자리들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율배반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 전문계 고교 교사는 "졸업생을 애써 지역 기업체에 취업시켜 놓으면 채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데다 연봉이 2천만 원이 넘지만 대학에 가겠다며 나와 버린다는 것이다. 전문계고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

백락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천리마를 감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신 駑馬(노마)를 가려내는 법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천리마는 흔하지 않았지만 노마는 어디에나 항상 있기 마련이어서 밥 걱정을 않아도 됐기 때문일 것이다.

수험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평생을 투자할 각오가 돼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대학이 취미생활로 여길 만큼 여유롭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천리마 감별법을 배울 필요는 없다.

李敬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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