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도심을 제대로 한번 바꿔보자

시내 곳곳 1천여개 골목길 형성/대구 대표 브랜드로 육성해볼만

나만큼 어수룩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물건 놓아둔 곳을 몰라 이리저리 찾다가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휴대폰은 늘 찾아 헤매야 하고 어제 읽던 책도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겨우 발견하곤 한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나 그 버릇이 어디 가겠느냐만은 이제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으면 좀 나아질 법도 한데 그것만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타고난 무신경 때문인지 정리정돈 하는 습관을 익히지 못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고생 길이 훤하게 열려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 무신경을 가진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든다. 일상생활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가치를 보는 눈,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감각에 대한 얘기다. 우리들 대부분은 대구의 잠재적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별다른 생각 없이 거리를 오갈 뿐, 낡고 오래된 건물과 좁아터진 골목길의 가치와 역사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경제적 효율성'에만 도취해 있었을 뿐이다.

요즘 도심 재창조는 하나의 거대한 조류가 됐지만 우리 환경은 어떠한가. 대구 외곽을 개발하면서 만든 고층 아파트가 도시의 질을 높이고 정체성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었던 지를 자문해보면 답은 금세 나온다.

대구의 옛 중심가는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혜의 자원이다. 역사와 전통, 문화가 거의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율성'으로 인해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대구에 '황금노다지'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쓴웃음을 짓게 하는 대목이지만 그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기자는 지난해 초 일본식 가옥을 취재하기 위해 전주, 군산을 며칠간 돌아본 적이 있었다. 군산은 일제가 만든 계획도시여서 10년전만 해도 한집 건너 일본식 가옥이 있었지만 지금은 100채 정도만 남아 있다. 전주는 중심가에 몇 채 있을 뿐 아파트에 밀려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대구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은 무려 1천채가 넘는다. 낡고 오래됐고 외형은 확 바뀌었지만 구조는 예전 그대로다. 일본인이 살던 집을 유물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가꾸면 얼마든지 쓸모가 있다.

대구의 도심 골목은 또 어떤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1천여개의 골목길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자산이다. 당장 편하자고 골목을 헐고 길을 넓힌다면 그보다 더한 '바보짓'이 없는데도 우리는 쭉 그렇게 해왔다. 전문가들은 흔하디 흔한 도시가 아니라 대구만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표상품으로 골목길을 꼽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귀하디 귀한 것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법인데도 저 멀리 떠있는 무지개만 좇는 어리석은 행동만 해왔는지 모른다. 공장을 유치하고 큰 구조물을 짓는 정책도 좋지만 그것 만으로는 도시의 질을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라는 말이 별건가. 대구가 갖고 있는 문화자산만으로도 얼마든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살아갈 길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구시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심 재창조 사업에 나서고 있어 반갑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지난달 열린 도심재생사업 중간보고회 자료를 보고나니 이런저런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도심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은 없고 단편적이고 백화점식 거리 활성화와 부분별, 장소별 개발 계획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컨트롤 타워'도 필요하고 현재보다는 훨씬 더 큰 대담한 프로젝트가 나와야 한다. 도심 전체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마인드가 있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 예산 걱정과 민원에 대한 두려움은 저 멀리 날려 보내라. 대구 시정이 언제까지 '쩨쩨하고 앞뒤만 잰다'는 얘기를 들을 것인가. 이번만큼은 통 큰 행정을 제대로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다.

박병선 사회1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