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9 낙동·백두를 가다] ①낙동강 큰 물길 연 봉화

▲ 봉화의 낙동강 본류와 운곡천의 물이 합류하는 지점(명호면 소재지). 봉화는 합류지점부터 낙동강이 시작된다는 기념비를 세웠고, 합류지점부터의 강을 이나리강으로 부르고 있다.
▲ 봉화의 낙동강 본류와 운곡천의 물이 합류하는 지점(명호면 소재지). 봉화는 합류지점부터 낙동강이 시작된다는 기념비를 세웠고, 합류지점부터의 강을 이나리강으로 부르고 있다.

기축년 새해를 앞두고 낙동강과 백두대간 탐사의 첫 출발지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과 강원도 태백시의 경계로 향했다. 경북의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곳이자 1천300리 낙동강 물길을 여는 곳으로 정한 곳이 석포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낙동강 탐사가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발원지인 태백시 황지못에서 시작하지만 취재팀은 굳이 황지못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줄기가 시작된 곳이면 모두 발원지로 여겨서다.

낙동강에 대한 한 연구조사에선 물줄기가 시작된 발원지는 1천634곳이라고 했다. 현장을 누빌수록 그 이유는 분명해졌다. 황지못은 문헌상의 발원지로 남겨놓아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1천m를 훌쩍 넘긴 선달산, 옥돌봉, 구룡산 등 백두대간과 대간에서 뻗은 수많은 고봉(高峰)과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 봉화는 태백산이 위치한 태백시 그 이상의 발원지를 품고, 낙동강의 물길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석포와 태백의 경계로 가는 길은 고행 길이었다. 봉화에서도 그 골이 깊고 험준한 산을 여럿 거쳐야 해서 봉화사람들도 큰 맘을 먹지 않고는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은 산 속을 관통할 만큼의 길이 잘 나있어 옛길 갈 때보다는 오가기가 쉽지만 쭉쭉 뻗은 도로에 익숙해 녹록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바닥에 밴 땀을 몇 번이고 훔치고 나서야 도달한 석포와 태백의 경계. 첫 인상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태백에서 내려오는 황지천은 메말라 있었고, 강 주변을 따라 도로 확장공사에 투입된 대형트럭들이 계곡의 허리를 잘라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경계의 남쪽으로 300m남짓 걸어 내려와서야 봉화가 왜 낙동강의 큰 물길을 여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황지천과 봉화의 병오천이 만나 물길이 배로 넓어졌다. 동행한 석포의 문화해설사 석남홍씨는 큰 물이 나면 다리 밑까지 차오른다고 했다.

황지천과 병오천이 만나는 삼거리에 위치한 정자(육송정)는 물길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육송정의 안내판은 "옛날 이곳 삼거리에 소나무 여섯그루가 있어 육송정이라고 했고, 조선 말엽 경복궁 중수 때 이 여섯그루를 베어 낙동강 뗏목의 운반기둥으로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봉화의 첫 하천 병오천을 지나칠 수 없어 병오천의 발원지인 백천계곡으로 나섰다. 백천계곡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하다. 20여분 숨가쁘게 차를 몰아 도달한 백천계곡 상류는 겨울의 회갈색 계곡과는 차원이 다르게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공기가 차고 더없이 맑아 여독이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백천에는 그 옛날 단군과 단종, 최치원의 세 혼령이 만나 바둑을 두고 놀다가 상처난 고기를 잣나무 송진으로 발라줬더니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그 비경을 짐작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현불사라는 절이 눈에 들어온다. 백천계곡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아름드리 금강송(춘양목)들이 가히 밀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둘레는 아름드리요, 높이는 아파트 10층에 견주고도 남음이 있다. 울창한 금강송 숲은 대낮의 하늘을 감춰버릴 정도다. 백천계곡은 가뭄을 모른다. 강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해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낙동강에게 백천계곡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아쉽지만 낙동강 본류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 석포의 삼거리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석남홍씨는 삼거리에서 눈꽃열차로 유명한 승부역을 지나 소천면 분천리까지의 100리 계곡은 '육로로도 접근하기 힘든, 숨겨진 비경을 품은 낙동강의 본천(本川)'이라고 했다.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계곡은 차 한대가 가기 힘들 정도의 비탈길과 오솔길이었고, 해질녁 계곡 틈새를 헤집고 나온 햇살과 절경이 어우러져 탐사 내내 맘이 울렁거렸다. 기암괴석, 청경지수 등 갖은 수사를 동원해도 모자람이 없다.

비경에 허우적대는 사이 경북의 첫 역인 승부역에 다달았다. 승부역은 육로로는 쉽게 접근이 안된다. 이를 말해주듯 승부역 자연석에는 '하늘도 3평이요, 꽃밭도 3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고 적혀 있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에 계곡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일행은 계곡의 이름이 없음에 즉석에서 감히 '낙동계곡'으로 이름지어 버렸다. 낙동계곡이라는 훌륭한 자연을 가진 석포를 오지, 광산촌으로만 알아온 일행은 머리에서 고정관념을 이내 떨쳐냈다. 낙동계곡의 겨울 경치가 이러한데 봄과 여름, 가을은 한없이 상상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또한 낙동강은 시작부터 절경을 품고 흘러가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낙동강의 본천을 한눈에 보고자 명호면 삼동재에 위치한 일명 '범바위'로 향했다. 범바위에서 내려다본 낙동강은 주변산을 휘감아 흐르고 있었고, 마치 태극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봉화사람들은 이 형상을 '산(山)태극 수(水)태극'이라고 불렀다. 옛 사람들이 얼마나 낙동강을 아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석포의 물줄기는 그 수량과 폭을 넓혀가며 범바위 아래 산을 휘감은 뒤 힘껏 내달리고 있었다.

봉화에는 낙동강의 물길을 여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운곡천이다. 운곡천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 춘양 땅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운곡천 물이 어디에서 내려오는지를 아는 주민은 극히 드물었다. 하루종일 수소문 끝에 주 발원지가 춘양면에서 강원도 영월가는 길에 위치한 도래기재(도역령·道驛嶺)임을 알게 됐다. 운곡천은 도래기재를 시작으로 중간 기점에서 각화산의 참새골에서 내려온 물과 만나 더 큰 물을 이룬 뒤 춘양면 소재지와 법전면을 거쳐 명호면 소재지로 향한다.

봉화가 왜 낙동강의 큰 물길을 여는 곳인지는 명호면 소재지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명호면 도천리는 바로 석포, 소천, 법전면을 거쳐 내려온 낙동강 본류와 운곡천이 만나는 곳이다.

지금은 계절 탓으로 물이 크게 줄어 그 위용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나루터가 있었을 만큼 물이 철철 흘러넘쳤다고 하니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강이 얼마나 큰 지 쉽게 짐작된다. 실제로도 강폭이 100m는 넘어 보였다.

최근 봉화군은 도천리에 기념공원을 조성했고, 비석도 세웠다. 비석에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 이곳에서 시작되다'라고 적혀 있다. 봉화사람들이 낙동강 본류와 운곡천의 합류 지점부터 '명실상부한 낙동강'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이유다.

봉화사람들은 합류 지점부터의 낙동강을 '이나리강(두 개의 하천이 만나는 강)'이라고 부른다. 과거 이나리강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청량산 입구에 광석나루터가 있었고, 일제때만 해도 주막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했다. 이나리강 중간 지점인 명호면 풍호리에는 일제때 주재소가 있어 지금은 사라진 당시의 비나리 나루터를 통해 벌목한 금강송을 뗏목으로 만들어 낙동강 하류로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또 인근 비나리 마을의 지명 유래는 배가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강과 연관되는 지명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나리강은 품안에 봉화의 수많은 물줄기를 한꺼번에 품고 청량산을 거쳐 안동댐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글 이종규기자 봉화·마경대기자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자문 정민호 봉화군 학예연구사 정도윤 청량산문화연구회 사무국장 김주현 낙동강수질관리위원회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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