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련 딛고 리더로 우뚝 선 3人 '인생조언'

지난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는 10년 전 IMF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냈다. 경기지표가 '위기'를 말하기 전 스스로 움츠러들어 위기를 현실화시켰다. 사상최대 폭락, 사상최대 적자 등 갈수록 새로운 기록들이 수없이 쏟아졌다. 생계의 막막함 앞에 삶의 질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1970, 80년대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 불평등을 이겨내고 21세기 리더로 우뚝 선 여성 명사를 찾았다. 이들에게 현재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극복 방법을 물었다. 굳이 '여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 달라고 청하는 그녀들의 위기극복 방법 속엔 소유와 무소유, 남성과 여성, 지위의 높고 낮음이 초월해 있었다.

◆가난 속에 피어난 들장미, 추미애 민주당 국회의원

추미애 의원 이름 앞에 흔히 '추다르크'와 '영남권 출신의 호남권 인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대찬 성격과 독특한 이력 때문에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그녀 앞에 놓인 상황이 먼저 회자된 탓이다. 위기를 이야기하자 그녀는 독특함이 아닌 진솔함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우선 그녀는 가난했던 과거를 반추했다. "난방비 때문에 배를 곯아야 했던 학창시절이었어요. 하루 두 끼를 김칫국으로 해결할 만큼 가난했지요." 어린 그녀에게 가난은 불편함과 동시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달랐다. 남다른 정의감에 판사가 되고 싶다는 딸의 꿈 앞에 그토록 가난했던 부모는 오히려 그녀를 지지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너라면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나를 인정해 주는 부모님이 든든한 우군이었어요."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때도 친구들과 비교하며 상한 자존심을 달래야 했다. "대학 입학 후에 알았어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 후 그녀는 열등의식을 버릴 수 있었다. 남과 비교가 아닌 내 꿈과 비교하는 습관이 생겼고, 스스로 세상 끝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정말 세상의 벽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흔히 현재가 고통스러우면 나만 억울하고 나만 못났다는 생각을 하기 쉬워요. 하지만 고통은 상대적인 부족함에서 오는 빈곤과 절망일 뿐이에요."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김칫국을 먹을 때마다 학창시절의 맛이 안 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부족한 김칫국을 나눠 먹었던 그때의 기억과 꿈이 현재를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반드시 내일은 옵니다. 절대 경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의지와 믿음이 결국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경험담이 아닌 국정을 책임지는 정치인으로 희망의 내일을 약속할 수 있냐는 말에 그녀는 주저없이 이같이 답하며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

◆대지를 닮은 모성을 품은 여장부,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미혼이다. 결혼을 한 적도, 자식을 키워본 적도 없는 싱글이다. 오롯이 일에 매달려 실력을 쌓은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다. 하지만 구청장이 된 지 2년 만에 그녀 앞엔 '모성'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감성 행정'이 어느 순간 '모성'이 돼 버렸다는 것이 그녀의 변이다.

위기 극복방안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우선 경험담을 끄집어냈다. "직원들의 관혼상제를 모두 챙겼어요. 또 여직원을 위해 매달 6일을 육아데이로 정해서 일찍 퇴근시켰어요." 구청장이 된 후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감성행정이었다. 직원들이 본인으로부터 지지받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개인적인 이메일도 꾸준히 보냈다. 직원들의 진심 어린 답장이 오기도 했다. 상황별 직원 대처방법도 달리했다. "직원의 실수를 질책할 때는 개인적으로, 칭찬할 때는 공개적으로 했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를 믿는 데서 온 방법이다.

재차 위기대처 방법을 묻자 윤 구청장은 '평상심'이라고 답했다. 평소 직원들과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위기에 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 조직은 비상체제에 들어가 있다. 2009년 상반기 예산 조기 집행 등 연일 야근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직원들이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일한다고 한다. "위기대처능력은 결국 평상심에서 나옵니다. 리더로서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평소 자신이 내세운 강점을 직원들에게 펼쳐 보이십시오." 마지막으로 윤 구청장은 위기에선 모든 이들이 움츠러드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에 사랑과 관심, 작은 것을 베풀 줄 아는 지혜를 가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죽음을 넘어선 의사, 박소경 경동정보대학 학장

박소경 경동정보대학 학장은 빼어난 미모 덕에 의사 출신이라는 것이 쉽게 와 닿지 않는 여성 인사 중 한 명이다. 밝고 쾌활한 성격과 그녀 특유의 친근함으로 무장한 탓에 위기대처 방법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의사 출신답게 그녀는 '위기'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죽음'을 먼저 꺼내 들었다.

"소아과 출신 의사잖아요. 젊어서부터 죽음을 많이 봤어요. 또 레지던트들은 사람 대접 못 받잖아요. 그 생활을 겪고 보니 강해진 것 같아요." 박 학장은 1970년 대 흔치 않았던 여의사였다. 온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의사로서 혹독한 과정을 겪으면서 오기가 생겼다. "'죽으면 실컷 잘 텐데, 살아서 움직이자. 죽으면 썩을 몸 부딪쳐 이겨내 보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독하죠." 독한 맘 품고 공부해 서른한 살의 나이에 의대 교수까지 올랐다.

그 후 4년 뒤 개원의가 됐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도 "나 같은 사람이 병원이 아닌 사업을 했다면 망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박 학장은 돈 되는 것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했다. 결국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또다시 심리학을 전공했다. 심리학을 공부한 후 그녀는'사람을 키우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요즘 다들 어려워 구조조정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위기엔 사람이 힘이란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박 학장은 21세기 인재들을 걱정했다. "1970, 80년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했던 부모세대를 답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세대보다 훨씬 똑똑한데도 의지가 약해 좌절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들의 강한 의지가 신념과 합쳐질 때 희망은 옵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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