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丑(기축)년 새해 벽두에 소 꿈을 꾸려고 뒤척이다 결국 실패했다. 소는 부귀와 번창, 입신양명의 상징이라 해서다.
소 꿈은 못 꾸어도 눈 뜨고 광고가 넘쳐나는 신문을 꿈꾼다. '신입 및 경력사원 모집 공고'라거나 '정규직 채용공고' 같은 求人(구인) 광고 말이다. 새해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시작해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체마다 사람이 모자라 일을 할 수 없다고 아우성치는 그런 뉴스들로 가득 찬 신문을 꿈꾼다.
모두가 지난해보다 올해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대통령부터 각료와 경제계 모두 힘 모아 극복하자는 신년사로 새해를 시작했다. '未曾有(미증유)의 경제위기'라는 표현이 나왔고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현 상황을 '非常(비상)'이라 규정하고는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관이 앞장서서 빈민을 구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왔던 것은 왕조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 正祖(정조)는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그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했다.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 임금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茶山(다산) 정약용은 "중국에서는 흉년이 들면 부자들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이때 반드시 지방관들이 먼저 私財(사재)를 내놓았다"며 솔선을 주문했다.
디지털 산업시대지만 국가가 존재하고 또 정부 주도로 경제구조가 움직여지는 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경제 위기를 돌파한다며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지금 무엇보다 먼저 해내야 하는 것이 일자리 만들기이다. 그런 면에서는 모두가 탁상 위 총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다.
지난 연말 안동에서는 낙동강 생태하천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말만 요란한 4대 강 물길 살리기 프로젝트지 정작 누가 어떻게 이 사업에 발을 들여놓는지, 지역민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얼마가 되는지 구체적 청사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녹색 뉴딜사업에 4년간 50조 원을 투입해 96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연말 정부 부처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일자리 대책을 합하면 모두 43만 개나 된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현재 실업자 75만 명과 올봄 졸업하는 수십만 대졸자들의 일자리는 걱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작 경제성장률은 취업이 아닌 실직자가 생겨나게 되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는 판이다. 실질적인 일자리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고층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지만 처음엔 중장비를 동원한 터 파기에 이어 레미콘차량과 펌프카 등 장비 운용이 대부분이다. 내부 마감 등 인력이 필요한 많은 부분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건설공사의 규모에 비해 일자리는 너무 적다는 의미다.
몇 년 전 중국 여행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투입돼 일하는 공사 현장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우리네 수준에서 그런 전근대적 인력집약적 사업장이 생겨날 수는 없겠지만 청년 취업난을 생각하면 어디 일자리를 생산해내는 공장이라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마다 천문학적 단위의 사업비를 쏟아 붓는 사업을 펼친다니 이제 곧 구인 광고가 넘쳐나야 할 텐데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사실 그 일자리들 중 우리의 청년 실업자들 눈높이에 맞는 일거리는 또 얼마나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행여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을까, 정부 발표 한마디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취업 대기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는 뉴스는 언제 쏟아질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새해 꼭 소를 올라타는 꿈이 아니라도 좋다. 소에 짓밟히거나 떠받히는 꿈이라도 꾸고 싶다. 그래서 모두가 일자리를 찾는 세상이 된다면 말이다.
이경우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