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큰 싸움'을 하라

애송이 누리꾼과 법정시비 한심/국가 큰틀 바로잡는데 전력하길

'큰 싸움'을 하라. 이명박 정부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싸우려면 상대를 제대로 골라서 싸우고, 싸움 같잖은 잔 싸움은 애당초 걸지를 말고, 이왕 싸우려고 작심했거든 끝장날 때까지 제대로 싸우라는 말이다. 미네르바 같은 말 장난꾼 청년을 상대로 공권력이 맞짱을 뜨듯 싸우는 옹졸스러움을 보면서 MB정권의 그릇이 간장 종발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인터넷 악플과 비겁한 익명성 언어폭력이라면 본란 역시 지난 정권 내내 신물이 나도록 당해본 처지니 세칭 미네르바란 친구를 두둔하고 편들 생각은 없다. 땅바닥이 좁은 덕분에 짧은 시간에 인터넷망이 온 나라를 얽으면서 속칭 '인터넷 강국'으로 떠올랐지만 정보 인프라를 이용하는 소수 악플 알바 누리꾼들의 무절제한 良識(양식)의 타락을 생각하면 악플과 표현의 자유를 가려내는 솔로몬의 조치가 나오긴 나와야 한다.

그럴 만한 사회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됐고 때도 무르익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미네르바든 누구든 본보기로 삼아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우겠다며 악플과의 싸움에 나선 것은 나쁠 것 없다. 그러나 국정원장, 경찰청장 등 사정기관장들을 교체, 새 칼날을 바꿔 잡더라도 싸움 대상을 잘못 고르거나 제대로 휘두를 배짱과 '싸움의 기술'이 모자라고 서툴면 쓸데없는 역풍과 제2 제3의 미네르바만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집권 초기부터 꺼냈던 공약'정책들마다 약간의 맞바람만 불면 금세 집어넣고 물러서기 바빴거나 朝令暮改(조령모개)식으로 흔들린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우유부단함이 500만 표를 더 얻고도 정작 막강 정권에 걸맞은 카리스마는 만들어내지 못했던 원인이다.

미네르바의 글들을 보면 이 정부의 권위가 얕잡아 보이고 있음이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글 토막마다 앞줄엔 경제이야기 몇 줄 쓰고 뒷 부분에는 거의 어김없이 '쥐XX' '그 잘난 미친 장로' '정신 나간 X이 대통령이긴 하지만…' '강만수라는 검은X…'가 등장한다. 글 쓴 목적이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진단하고 방어하자는 계도적 목적보다 욕설과 비방, 비아냥으로 反(반)MB계층에게 카타르시스를 해소시켜주고 경제얘기는 양념 삼아 이용해 먹은 인상마저 준다.

미네르바의 예측이란 것도 몇 가지는 맞았지만 금리 폭등,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 물가 상승률 급등, 국제유가 상승 같은 큰 줄기, 주요한 지표나 예상은 엄청 크게 빗나갔다. 한 마디로 '경제 대통령'이 아니라 얼치기 반풍수란 평가가 더 적절하다. 그런 수준의 싸움 상대면 적어도 정부 입장에선 사법처리로 갈 게 아니라 그냥 무시한 채 넘어가는 게 더 나았다. 인터넷의 부정적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법제도 보완이나 인터넷 도덕운동을 확산시켜나가는 싸움(정치력)이 훨씬 더 어른스러웠다는 뜻이다.

솔직히 미네르바의 문맥과 내용표현도 뜯어보면 허위 사실 유포 죄보다도 괘씸죄에 걸린 뉘앙스가 없잖다. 대통령을 '쥐XX'라고 부르고 '70년대 구닥다리 대통령'으로 빗대며 장관을 '검은X'라 부르는데 속 편할 권력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공권력으로 두들길 만큼 맷집 큰 싸움 상대는 아니었다. 싸움 같잖은 '닭 싸움'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한두 줄 내용이 틀렸다고 허위사실 유포로 감옥 보내자마자, '코스피 지수가 3000이 되고 주식 사면 돈 번다고 예측했던 이 대통령도 잡아넣어야 공평하잖냐'는 비아냥부터 번진 게 그 방증이다.

눈 온다고 예보했다가 비가 왔으니 기상청장도 잡아넣으라는 코웃음도 사방으로 퍼진다. 긁어 부스럼이었다. 정작 끝장날 때까지 진력해야 할 큰 싸움(정치 개혁, 공기업 쇄신, 불법노조 세력 척결, 이념 편향의 좌파 청산 포용, 교육 혁신 등)에는 계속 밀리고 꼬리 내리면서 어설픈 누리꾼과 잔 싸움이나 걸고 있으니 큰 카리스마가 생겨날 리 없다. 보라, 큰 싸움 거리인 국회폭력방지특별법은 입법도 되기 전에 징역형에서 벌금형으로 또 말을 바꾸고 있다.

남은 임기만은 상대를 제대로 골라가며 '큰 싸움'을 하라.

金廷吉 명예주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