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새해에 건강하십시오! 아침 6시, 세수하고 단장한 후 멀리 부모님 계신 곳을 향하여 엎드려 큰 절을 하고, 마음으로나마 두손 모아 청주 한 잔을 올립니다.
이곳 독도도 아직은 미명입니다. 등대는 아직 불빛을 어두운 바다에 뿌리고 절벽에 부딪친 물결은 이 신새벽에도 하얗게 부서지고 있습니다. 섣달 그믐날 밤까지 그렇게도 울부짖던 바람은 정월 초하루를 맞아 다소 잦아들었습니다. 그 많은 괭이갈매기들은 어디서 잠들었는지 아직은 기척 없습니다.
오늘 아침 멀리 계신 부모님께 이렇게 세배를 올리니 먹먹한 가슴에 콧잔등이 찡해옵니다. 문득 제가 이곳 절해의 고도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 생경한 마음이 듭니다. 이 땅의 아들로 태어나 병역의무를 치르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직에 있는 몸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월 초하룻날 동해 바다 한복판 외딴 섬에 서 있는 이유는 이러합니다. 벌써 지난해 2월의 일이 되었지만 아버지께서도 잊을 수 없으실 터이지요.
47년 전인 1961년, 당신 손으로 직접 매입하여 논농사를 짓다가 한 때는 사과나무를 심었던, 종내는 필지를 합하여 1천200여평 한 농장을 일군, 그 땅 말입니다. 그 땅 가운데 한 필지 200여평이 구입 당시 이전등기가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거였지요.
땅을 팔았던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이고 지난해 느닷없이 그 후손이라는 사람이 땅주인이라면서 나타났지요. 그리고는 경계측량을 해서 결국 자기네 땅이라며 뻘건 말뚝을 논 한가운데 콱콱 박아 두었지요.
측량하는 그 날 당신께서는 논에 나갔다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돌아와 몸져 누우셨지요. 멀쩡한 논에 촘촘히 박힌 붉은 말뚝은 당신 가슴의 '못'이었습니다. 저 역시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송사(訟事)준비를 하다가, 일을 오래 끌다보면 부모님 심신만 해칠 것 같아 결국 땅을 다시 사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 땅을 내가 꼼꼼히 챙기지 못해 두 벌 돈을 주고 다시 사들이게 되었지요.
당시, 땅에 뻘건 말뚝이 박혔을 때 동네 사람들은 모두 무어라 그랬습니까. 50년 가까이 멀쩡히 농사 지어온 것을 알면서 '법이 내놓으라면 줘야지' '그동안 공짜 논 잘 부쳐 먹었네' 그랬습니다. 우리 속이 까맣게 타는 줄을 모르고….
아버지 어머니, 세상 일이 그러했고 땅이란 것이 그러했습니다. 그건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여서 독도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난해 내 집이 그런 지경을 당하고 나니 장차 우리 땅 독도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 이 나라 국민된 사람이라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 땅을 내 땅이라고 명확하게 근거지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이 설날 아침 동해 한가운데 서 있는 까닭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곳 독도에서 마늘을 깔 때마다 지난해 9월 집 떠나 올 때 헛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접으로 엮어주시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구부러진 허리에 작아만 보이는 팔순의 노부모님을 보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에는 감홍시 두 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10여리 읍내 우체국까지 가서 부쳐 주셨지요. 그 홍시 차마 목이 메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러나 저는 삼백예순 날 이슬 젖은 논두렁을 밟고 나가 별빛을 이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두 분을 하루라도 마음 편케 모신 날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함께 휴가를 가자고 말씀드려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시며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뭍으로 나가면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늦은 휴가라도 한 이틀 나설까 합니다. 그 때는 널찍한 봉고차라도 한 대 빌릴 생각입니다. 큰아들 없는 명절 너무 기신(氣神·기력과 정신)없어 마시고 부디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설날 독도에서 다시 엎드려 절합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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