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국근의 風水기행] 벌명당 나주 반남박씨 시조묘

▲ 반남 박씨 시조 묘 전경. 넓은 명당에 안대도 혈장에 맞춰 나지막하게 자리 잡았다. 청룡과 백호가 팔짱을 끼듯 교쇄되어 명당의 기운이 새는 것을 막고 있다.
▲ 반남 박씨 시조 묘 전경. 넓은 명당에 안대도 혈장에 맞춰 나지막하게 자리 잡았다. 청룡과 백호가 팔짱을 끼듯 교쇄되어 명당의 기운이 새는 것을 막고 있다.
▲ 박응주 묘 입수의 석맥. 묘 주위 단단히 박힌 이런 작은 돌멩이를 요석(曜石)이라 한다. 요석은 귀(貴)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 박응주 묘 입수의 석맥. 묘 주위 단단히 박힌 이런 작은 돌멩이를 요석(曜石)이라 한다. 요석은 귀(貴)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 나주지방에 박의(朴宜)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부친이 세상을 뜨자 이웃에 사는 지관(地官)에게 명당자리를 부탁했다. 지관이 이리저리 지세를 살펴보다 천하의 명당자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천기(天氣)를 누설하게 돼 화(禍)가 닥칠 것을 두려워 한 지관은 실제보다 약간 위쪽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자리를 잡는 동안 지관의 불안한 모습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상주는 한밤중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지관 부부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때마침 그날 묘지를 잡아준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게다. 지관이 그의 부인에게'지금의 묏자리보다 조금 아래쪽이 천하의 명당자리요. 하지만 그곳을 가르쳐주면 천기를 누설한 죄로 내가 벌을 받게 될 것이요'라 했다. 이 말을 듣게 된 박의는 이튿날 지관이 말한 그 아래쪽에다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지관은 사색이 됐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상주에게 다가가 '내가 집에 도착하게 될 때까지 땅 파는 것을 늦춰 주시오'라며 부탁을 했다. 이를 받아들인 상주는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지관이 집에 도착했다고 여겨지는 시점에 다시 땅 파기를 시작했다. 그때 수많은 벌 떼가 땅속에서 나오더니 미처 고개를 넘어가지 못한 지관을 쏘아 그 자리서 숨지게 했다. 이에 사람들은 지관이 벌에 쏘여 숨진 고개를 벌고개(蜂峴), 그 명당을 '벌명당'이라 부르게 됐다.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 자미산 기슭 동쪽엔 큼지막한 두 개의 묘가 아래, 위로 나란히 있다. 아래 묘가 전설 속 벌명당으로 알려진 반남 박씨 시조 박응주(朴應珠) 묘이고, 위는 손자인 박윤무(朴允茂) 묘다.

나지막한 자락에 터 잡은 박응주 묘는 앞은 시원하게 트이고 뒤는 산자락에 기댔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원칙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얘기다. 앞이 트였다고 해도 그냥 밋밋하게 트인 게 아니다. 길게 뻗어나간 청룡과 백호가 팔짱을 끼듯 서로 교쇄(交鎖)하고 있다. 수구도 완벽하단 뜻이다. 혈장을 빼곡히 둘러싼 주위 산세는 생기를 챙기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명당을 둘러싸고 내려간 외백호는 안(案)을 겸하고 있다. 백호장안(白虎長案)은 재물이 풍성함을 뜻한다. 청룡은 일자문성(一字文星) 형태다. 일자문성이 있는 지형에선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난다 했다.

이 묘는 평야지대로 내려온 평강룡(平崗龍)이다. 평강룡은 평평한 등성이로 내려왔다는 뜻을 가진다. 그렇다고 힘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벌판에서 솟았기에 그만큼 힘이 있다. 돌은 지기의 집합체다. 힘을 모은다는 뜻이다. 묘 주위의 단단하게 박힌 돌은 그 만큼 큰 힘을 실어 준다. 그렇다고 주위의 모든 돌이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잡석이나 뜬 돌은 이롭기는커녕 되레 손해를 끼친다.

위 박윤수 묘에서 박응주 묘로 이어지는 입수(入首)에 석맥(石脈)이 있다. 그것도 아주 단단하게 박혔다. 다소 펑퍼짐하게 내려온 입수룡을 보완해 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명당이 넓고 주위 산세에 험한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묘 뒤에 서면 맨 먼저 느끼는 감정이 편안함이다. 아늑한 땅, 복 받은 땅임이 틀림없다 하겠다. 그러기에 조선조 그 많은 왕후, 정승 등 인재를 배출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국근 편집위원 chonjjja@hanmail.net

▨ 벌명당=뒷산의 봉우리가 멍덕(토종 벌통 위를 덮는 뚜껑, 짚으로 바가지 비슷하게 틀어 만듦) 모양이며, 주변의 산세가 꽃을 닮은 지역을 말한다. 즉 묘가 있는 등성이 벌통이 되고, 주위 산들이 꽃이 된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곳에 묘를 쓰면 벌 떼처럼 그 자손이 번창하며, 벌 떼들이 꿀을 모으듯 재물과 명예가 뒤따르게 된다고 본다. 하지만 풍수설화에선 벌명당의 묏자리를 잡아준 지관은 기이하게도 모두 벌에게 쏘여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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