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창녕군 화왕산 산불참사 현장은 10일 오후 먹물을 뒤엎은 듯 온통 새카맸다. 참사 현장 곳곳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봉화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 정상으로 걸음을 내디딜수록 현장은 더 참혹했다. 검은 재들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산을 덮은 잿더미 위에서도 쉴새없이 연기가 피어 올랐다.
시커먼 재를 들추자 관광객들의 각종 유류품들이 속속 나왔다. 특히 관광객들이 운집했던 배바위 근처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등이 널브러져 있어 사고 당시의 아비규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축구장 20배 크기인 화왕산 억새평원(18만㎡)은 이처럼 하루 새 관광명소에서 '생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창녕군 사고수습대책본부, 경찰, 소방공무원, 의용소방대원 등 800여명은 이날 오후 늦도록 실종자와 유류품 등에 대한 수색작업을 계속했다. 헬기 4대도 허공을 가르며 끊임없이 물 폭탄을 쏟았다. 하지만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데다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아 수색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건조한 날씨에 불씨는 금세 되살아나 연기를 피워냈다. 물펌프를 짊어지고 진화작업을 벌이던 한 소방대원은 "건조한 날씨와 바람 탓에 잔불이 쉽사리 제거되지 않고, 매캐한 연기 냄새에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창녕군청 별관에 마련된 대책본부에도 공무원 10여명이 사고수습에 여념이 없었다. 간간이 유족들이 들이닥쳐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이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모(48)씨는 "조속히 사후수습을 해도 모자랄 판에 공무원들은 바람 탓만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대책본부 관계자들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였다. 한 공무원은 "축제의 장이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머리를 숙였다.
사망자 김길자(66·여)씨 등 3명의 시신이 안치된 창녕 서울병원 빈소에는 유족들이 모여들어 오열했다. 하지만 김씨를 제외한 시신 2구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탓에 유족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직접 찾아보겠다'며 화왕산 정상으로 내달렸다. 한 유족의 부모는 "체형은 비슷하지만 절대 내 딸이 아니다. 믿을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창녕군청 측은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유족 보상부분과 장례절차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군청 측은 "남은 사체 2구의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유족들과 보상 문제를 협의하겠다"며 "현재는 사체에 대한 신원확인 작업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군은 지난 1월 중순 한 보험회사에 불특정다수에 대한 보험을 가입했지만 사망자 1인당 최고 1억원씩 최대 3억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어 군 측의 추가 보상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부상자도 1인당 최고 200만원씩 1천만원 한도 내에서만 보상이 가능해 부상자 61명에 대한 보상도 남은 과제다.
장례절차는 사망자의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유족들의 뜻에 따라 합동분향소를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번 참사 관련 공무원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방화선 관련 규정 등이 조례 등으로 명문화돼 있지 않아 조사와 처벌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군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면서 방화선 등 안전에 만전을 기했는지에 대해 집중 수사하고 있다. 과실이 확인될 경우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광효기자 khjeong@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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