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A(24)씨는 2007년 학생 비자로 입국, 대구 모 대학에 입학했다. 부모가 보내준 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첫 학기 등록금을 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더 이상 부모에게 손을 내밀기 힘들었다. A씨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달성공단에 취직했다. 달마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보며 대학 졸업을 꿈꿨다.
하지만 그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회사는 그에게 "더 이상 나오지 말라"며 해고 통지를 했다. 두달간 실직 상태로 지내다 보니 통장의 잔고는 점점 줄었다. 생활비 때문에 친구들에게 빚까지 지게 됐다. 궁지에 몰린 A씨는 일자리를 잃은 같은 처지의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다 급기야 강도짓을 벌였다. 현재 수감중인 A씨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앓아 누우셨다. 용서받을 방법을 제발 알려달라'는 편지를 최근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로 보내왔다.
불황에 거리로 내몰린 외국인근로자들이 '범죄자'로 전락하고 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입국, 내국인이 기피하는 3D 현장을 지켜왔으나 경기침체로 '해고 1순위'가 되면서 각종 범죄에 연루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B(27)씨 등 중국인 근로자 4명은 구미시 임은동의 한 원룸에 침입, 같은 중국인 여성 3명을 위협해 목걸이 등 70만원어치의 귀금속과 현금 100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로 입국, 직장생활을 하다 실직한 뒤 재취업에 실패하자 불법체류하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7일에는 퇴근길 중국인 여성을 납치해 400여만원을 빼앗은 불법체류 중국인 일당 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관광비자로 들어온 뒤 최근 직장에서 쫓겨나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강도짓을 했다.
구미에서만 최근 수개월 동안 강·절도 혐의로 구속된 외국인이 10명이나 될 정도로 외국인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은 외국인 범죄의 경우 예전엔 보이스피싱 등 전문적인 범죄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불경기로 직장에서 내쫓긴 외국인근로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대구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87건의 외국인 범죄가 발생했다. 2007년 68건에 비해 22%나 늘어난 수치다. 경찰은 외국인들의 경우 지문채취나 DNA 분석자료가 없다 보니 수사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범인 검거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칠곡경찰서 서영일 지역형사팀장은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 등으로 범죄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인권단체 등은 최근의 빈번한 외국인 범죄가 불황에 따른 실직으로 빚어진 현상인 만큼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모경순 사무처장은 "외국인이 직장에서 해고된 뒤 2개월내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한탕'을 노린 범죄 유혹에 쉽게 빠져 든다"며 "구직기간 연장 등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탄력적 법적용과 사회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구미·칠곡 이창희기자 lch888@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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