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야구 그리고 대구, 이만수가 말한다

"이번 WBC 계기로 아시아 야구시대 드디어 열렸습니다"

"국가가 없으면 야구도 없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이 없으면 야구가 있을 이유가 없다."

'독배'라며 모두가 고사한 2회 WBC 한국대표팀 사령탑을 수락한 직후 김인식 감독이 한 말이다. 야구의 '존재론'을 일갈한 셈. 굳이 김 감독의 말을 들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스포테인먼트'(Sports+Entertainment)로서의 야구는 진행형이다. 특히 2007년 5월 만원 관중에 대한 답례로 '팬티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만수 SK 와이번스 수석코치의 쇼(Show)는 팬서비스의 결정판.

미국에서 10년간 야구수업을 받고 나름의 야구 철학을 전파하고 있는 이 코치를 26일 오후 부산 동래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호텔은 SK 와이번스 선수단의 전용 숙소. 롯데 자이언츠와 시범경기 2연전을 위해 부산에 내려온 터였다. 이 코치에게서 WBC 준우승 이후 한국 야구의 발전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곁가지로 그의 대구에 대한 애정도 덧붙였다.

?◆'만수야, 만수야'

-팬들이 '만수야' 내지는 '만수행님'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것도 팬을 위해 감수할 부분인가요.

"당연합니다. 친근감입니다. 지금까지의 제 이미지겠지요. 지금도 대구에 가면 어른들은 '만수야', 어린 친구들은 '만수형, 만수행님'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제게 '이만수 코치님'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어색합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도루 기록이 거의 없는 제게 "만수야, 뛰어"를 외치는 팬들이 있었습니다. 게임의 흐름에 지장이 없다면 뛰었습니다.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었지요. 뒤뚱거리며 도루를 감행하면 실패하더라도 팬들은 '오늘 본전 뽑았다'고 합니다. 그게 프로선수라고 생각합니다."

-16년간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생활을 하셨는데요. 요즘은 그렇게 오랜 기간 프랜차이즈 스타(한 팀에서 오래 뛰어 대표할 만한 선수)로 뛰는 선수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팀에서 오랜 기간 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프로선수는 실력으로 입증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만 프랜차이즈 스타는 팬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승엽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 대구뿐 아니라 이승엽이 가는 곳마다 관중이 만원이었습니다. 이승엽도 일본 진출 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9년간 뛴 프랜차이즈 스타였습니다. 이승엽을 보러 오는 관중도 상당수였습니다. 배영수도 마찬가지지요. 배영수가 등판하는 날에는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거든요. 미국도 프랜차이즈 스타를 전략적으로 만듭니다. 팬과 팀이 동일시되는 매개체가 바로 프랜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이죠."

?◆WBC 준우승의 영광과 뒤안길

-4강 신화 재현을 목표로 삼았던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준우승을 거뒀습니다. 예상하셨는지요.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성적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일본이나 한국은 개인보다 국가를 중요시합니다. 당분간은 아시아쪽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입니다. 미국 등에서는 몸값이 비싼 선수들이 많지만 그들은 전력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 대회에서도 많이 느꼈지만 단합하고 뭉치는 팀에게는 누구도 당할 수 없습니다. 경기침체로 어려운 시기에 잘 뭉쳐서 좋은 소식을 가져온 후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즈음 WBC 주전 포수로 활약한 SK 와이번스 소속 박경완 선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경완 선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코치는 "경완아, 축하한다. 고생많았다. 오늘 피곤할텐데 푹 쉬어라. 인천에 가거든 보자. 혹시 잠이 안 오거든 시차적응이 안 될텐데 잠오는 약이라도 먹고 자라"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 이후 하나같이 야구의 저변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변 확대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능은 각 분야에서 뛰어납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공부를 해야 양반이라는 의식이 아직 강해 부모님들이 운동을 하는 자식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운동과 공부는 병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취미로 하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아이에게 재능만 있다면 운동을 시키려고 합니다. 운동으로 밥먹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큰 효과가 있습니다. 함께 움직여 흘린 땀의 가치를 아이들은 몸으로 체득합니다. 땀흘리는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야구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스포츠입니다. 땀흘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을 운동장에 내보내보세요.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장비가 많지 않아도 됩니다. 테니스공과 방망이, 포수가 낄 글러브 하나 정도면 충분합니다."

-미국에 10년 동안 계셨습니다. 야구 선진국인 미국에 비해 한국 야구의 인프라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야구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일본에 비해 우리의 야구 인프라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열악한 국내 상황에 비춰 준우승까지 한 것은 기적에 가깝지요. 그만큼 시설과 저변이 빈약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야구가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걸 깨우치면 저변은 확대됩니다. 간단한 시설은 있어야합니다. 의외로 야구에 넓은 공터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전문적인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 크기의 운동장일 뿐입니다. 10년간 미국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워한 것 중 하나도 그 점이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야구는 생활이었습니다. 동네별로 야구팀이 있지만 주로 소프트볼팀이었습니다. 여성들의 참여를 위한 것이지요. 축구장 반 정도 크기면 충분합니다. 소프트볼팀들이 함께 운동도 하고 곧 그 지역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동네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더군요. 우리나라도 아파트를 지으면 대부분 공원을 함께 만들어 기부채납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공원도 좋지만 운동시설을 꼭 마련할 것을 권합니다."

-학원 야구팀의 잇따른 해체 소식이 들리는데요. 반면 사회인야구팀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50여개에 불과한 고교야구팀에 비해 사회인야구팀의 숫자는 공식적 집계가 없지만 수만개일 것으로 추측된다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경기 지역에만 1천개가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지만,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어도 '공부나 하라'는 부모님들의 간섭이 사라진 뒤 성인이 되어서 뒤늦게 하고 싶은 걸 하게 되는 거지요. 사회인야구팀 선수들은 모두 직장인들입니다. 야구를 통해 전문적으로 밥벌이를 하려는 이들은 아닙니다. 단지 야구의 재미와 맛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회인야구팀이 자생적으로 생기는 거지요." (대구에는 사회인야구팀만 600여개. 클럽 리틀야구팀도 10개가 있다.)

?◆팬이 없는 야구는 야구가 아니다.

-팬서비스에서는 이 코치님이 단연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성적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야구 성적이 나쁘면 팬들도 떠날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데 제가 선수시절 인천에 가면 암표상이 적잖았습니다. 그 당시 인천을 연고로 한 팀은 삼미슈퍼스타즈,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 등 우승권은 커녕 꼴찌를 도맡아 하던 팀이었어요. 하지만 팬들은 팀에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성적이 나빴던 때에 오히려 관중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야구의 첫 시작은 인천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요. 국내야구의 마인드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고 바뀌어야합니다. 연패를 거듭하는 팀에 팬이 없는 게 아닙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에 팬들이 움직입니다. 팬들의 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아웅다웅한다면 팬들도 떠납니다."

-팬들을 위한 것이라면 구장 시설에도 변화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 이후 선수들이 구장 문제를 많이 거론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구구장의 시설은 프로선수들이 사용하고 팬들이 즐기기에 미약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구뿐만이 아닙니다. 대구는 구장을 새로 짓는다는 얘기도 들려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우리나라 구장은 시설 부분에 대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돕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스포츠를 통해 경제 활성화에 나섭니다. 부산도 지금 팬들의 응원열기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사직구장을 꼭 가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이 돈을 어디서 쓰겠습니까. 사직구장 인근에서 다 씁니다. 우리는 아직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대구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보기 위해 대구까지 원정응원을 오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부산갈매기'들이 대구구장에 오면 3루측 전체를 차지할 정도라는데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도중 이만수 코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면 이 코치는 반갑게 맞았다.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대구에 대한 고유한 느낌이 있습니까.

"제가 귀국한 뒤부터 대구에서 경기가 있으면 우리 가족이 다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3연전씩 하기 때문도 있지만 대구가 고향이다보니 여전히 친구가 많아섭니다. 미국에 있을 적에 원정 경기를 마치고 시카고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시카고 시내를 보면 푸근함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구단 전세버스를 타고 대구로 원정경기를 오면 톨게이트에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이만수는?=중앙초-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를 졸업했다. 1977~78년 청소년 국가대표, 1978~81년 국가대표, 1982~97년 대구 삼성라이온즈(16년), 1998년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애크론애로스 코치, 1999~2006년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 2006년~현재 인천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1984년 한국 야구 최초 타격 3관왕(홈런, 타율, 타점), 1983∼85년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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