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인플레이션 긍정 효과

'가격혁명' 자본주의 발전의 촉매 역할

"사랑은 끝없는 신비이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인도의 작가 타고르가 한 말이다. 타고르에게 사랑이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였나 보다. 하지만 사랑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경제에도 많다.

최근 전 세계가 경기 후퇴를 벗어나기 위한 대규모 재정투입 등 경기부양을 위한 조치들이 결국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만 생각하는 인플레이션, 만약 그 인플레이션이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적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경제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생산을 위축시키는 등 국가경제와 각 개인들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20년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러시아, 1970년대 정치적 혼란을 경험한 남미의 국가들, 1980년대 일부 동유럽 국가들에서 발생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국민들의 고통을 크게 증가시켰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오히려 경제발전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한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가격혁명'. 이는 15세기 후반부터 150여년 동안 멕시코 페루 등 중남미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생산된 금이나 은이 유럽으로 대량 유입되고 흑사병의 창궐로 감소했던 유럽 인구가 증가하면서 서유럽 전역의 물가가 5, 6배가량 상승한 현상을 말한다.

당시 유럽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수준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런 시기에 금,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물가가 급등했다. 유통되는 화폐의 양(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또 14세기 중엽(1347~1350) 흑사병의 창궐로 감소했던 유럽인구가 다시 증가,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흑사병으로 사망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자 수요가 줄어들게 되면서 이번에는 가격이 하락하게 되었다. 동시에 원재료 공급이 부족하게 되고 노동시장에서 장인들의 수가 줄면서 살아남은 장인들이 높은 임금을 요구했고 이는 수공업품의 가격상승을 낳았다. 이후 전염병이 점차 안정되면서 인구는 다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식량 및 생필품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는 상승하게 됐다.

인플레이션이 발생되면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사회 계층 간에 부(wealth)가 비자발적으로 재분배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면 화폐 및 금융자산의 가치는 하락하게 되고, 반면 실물자산의 가치는 올라간다. 따라서 화폐 및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부가 줄어들고 실물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부가 늘어나게 된다. 16세기경부터 무역이 증가하고 수공업품 및 사치품의 생산이 많아지면서 지주들은 소작인들로부터 현물이 아닌 화폐로 지대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화폐 납부 방식은 초기에는 지주들에게 유리하였다. 하지만 가격혁명으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서 화폐를 지대로 받던 봉건지주들은 손해를 보기 시작한 반면 곡물, 수공제품 등 실물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수공업자, 중소상인들은 이득을 보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봉건지주들은 경제적 지위가 약해지면서 점차 몰락해 가기 시작했고 수공업자, 중소상인들은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유럽 근대 시민사회 성립의 중심 세력인 자본가 계급으로 성장해 갔다. 이처럼 가격혁명은 중세 유럽사회의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상당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안정적 수준으로 억제하고자 그렇게도 부단히 노력하는 인플레이션, 그 인플레이션이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촉매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상만(대구은행 성서공단영업부 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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