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월은 잔인한 달]엔고 특수 비켜가는 대구

이순주(38)씨는 결혼식 참석차 주말에 가족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호텔이 꽉 차 방을 구할 수 없었던 것. 결국 이씨는 일정을 줄여 서둘러 대구행 기차를 타야했다. 평소엔 별도 예약 없이 쉽게 방을 구했던 터라 이씨는 의아했다. 알고 보니 엔고 특수를 타고 서울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숙박업소를 꽉 채운 것. "명동이나 동대문을 나서도 부딪히는 사람의 70~80%는 일본인 관광객들이예요. 상인들도 아예 물건값을 엔화로 받더라고요. 엔고 특수를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하더군요."

실제로 서울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불황 속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 매장에는 아예 일본어 회화가 가능한 직원들이 상주해 있다. 화장품가게·안경점·편의점·노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도 일본인 관광객들로 특수를 맞고 있다.

김해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부산국제여객터미널과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한 일본인 관광객은 각각 3만3326명과 4만563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 이상 늘었다.

이로 인해 부산은 각 구청별로 관광객 유치전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각 구 홍보단을 꾸리는 한편 의료관광준비위원회를 꾸려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쇼핑에 열광한다. 서울의 한 명품관의 경우 올 1월 외국인매출이 전년 대비 300% 이상 늘어나기도 했고 백화점 일부 명품 브랜드의 경우 일본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재래시장과 마트도 일본인들로 붐비기는 마찬가지. 김·라면·채소·과일 등 생필품을 구입해가는 일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미용실·안경점·액세서리 가게들, 식당 할 것 없이 일본인 관광객 특수로 불황기에 웃음을 짓고 있다.

'엔고 특수'는 쇼핑에만 그치지 않는다. 뮤지컬 관람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난타·점프 등 뮤지컬공연은 일본 관객들이 부쩍 많아져 서울에는 외국인 만을 대상으로 티켓을 판매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대구가 장기 경기침체에 한숨짓고 있는 반면 서울과 부산은 이처럼 엔고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구는 일본인 관광객을 맞을 호재를 놓치고 있는 것.

실제로 대구의 가장 번화가인 동성로를 걸어도 일본인 관광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당연히 일본인을 위한 안내서도 구하기 힘들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서충환 홍보팀장은 "매장에서 쇼핑하는 일본인은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대구는 백화점·대형마트·재래시장 등 유통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지만 볼거리, 즐길 거리가 없어 외국관광객들이 찾아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근 경주를 찾는 일본인이라도 대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대구가 엔고 특수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다는 것.

대구에 관광 인프라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배성혁 (사)대구국제뮤지컬축제 집행위원장(예술기획 성우 대표)는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대구까지 찾아오는 일본 공연마니아들이 꽤 많다"고 전했다.

배 위원장은 이 점을 적극 활용, 올 6월에 열리는 대구국제뮤지컬축제에 외국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홍보 하나 없이도 '알아서 찾아오는' 뮤지컬 마니아들의 발걸음을 대구로 향하게 할 수 있는 묘책을 찾고 있는 것.

"뮤지컬 마니아들은 일본에 없는 공연을 찾아 대구로, 서울로 찾아다녀요. '미스사이공'의 경우 일곱 번이나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창작뮤지컬도 다 꿰뚫고 있죠. 아이돌 스타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기획, 공연한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입니다." 배 위원장은 대구가 공연도시로 거듭나는 것이 일본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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