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 책은 숱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좋은 책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는 쉽지 않다. 다른 출판사에서 이미 펴낸 책을 중복 기획하여 펴낸 책, 내용을 여기저기서 짜깁기하여 만든 책, 제본이 엉성하고 오탈자가 많은 책, 제목은 그럴듯한데 내용이 빈약하여 실망스러운 책이 많다. 그런 가운데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을 발견한 기쁨이란!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아동문학가 미야자와 겐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림책으로 출간한 작가의 '첼로 켜는 고슈'를 읽었을 때의 기묘한 느낌과 우리교육에서 출판된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라는 동화책의 제목이 주는 끌림 때문에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고 마음에 품고 있던 작가였다.
처음 읽은 겐지의 책은 사계절 1318문고의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였다. 읽고 난 첫 느낌은 미야자와 겐지라는 작가에 대한 강렬한 관심과 놀라움이었다. 쓰여진지 70, 8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옛날 작품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 것이다. 책에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 이렇게 두 편의 중편이 들어 있다. 구스코 부도리와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는 앞부분 내용은 상당히 비슷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전혀 다른 내용으로 진행된다. 두 작품에 나오는 '숲' '수렁논' '무무네 시'와 '이하토부 시'는 겐지가 인식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네네무의 '무무네 시'는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도무지 살 만한 데가 못 되는 곳이다. 그러나 부도리의 '이하토부 시'는 전혀 다르다. 그곳은 '수렁논'에서 일하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학자와 기사가 협력하여 일하는 곳이다.
기근이나 냉해처럼 자연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냉혹하지만,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겐지는 이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는 일부 내용을 분실하였고, 뒷부분은 미완성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읽을 수 있다. 구스코 부도리의 선택과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선택과 결말이 그렇게도 다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겐지가 이 작품을 쓴 시기는 일본이 한참 식민지 경영에 열을 올리던 1920년에서 1933년 사이이다. 세계전쟁 도발에 여념이 없던 군국주의 일본에 살면서 작가의 세계인식은 생태주의, 평화, 작은 것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뜬 원인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친김에 '주문이 많은 요리점'도 읽어보았다. 맛있는 요리를 기대하고 들어간 산속 요리점에서 옷과 신발을 벗으라는 주문부터 시작해서 몸에 향유를 바르라는 주문까지 받고 당황하고 두려움에 떠는 두 사냥꾼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실력부족 때문에 혼나는 교향악단의 단원이 밤마다 첼로를 연습하며 이웃 동물들의 방문을 받게 되는 '첼로 켜는 고슈'는 또 어떤가. 번뜩이는 기지와 해학이 넘쳐흐른다. 참, 어릴 때 TV에서 열심히 봤던 만화영화 '은하철도999'를 기억하시는가? 그 영화의 원작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단편이라는 것, 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강한 의식이 담긴 애니메이션들이 겐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 이 책들을 읽고 난 후의 내 추측이다. 이외에도 겐지의 작품은 논장출판사의 '오츠벨과 코끼리', 우리교육의 '빙하쥐와 털가죽' 등이 있다.
#신 남 희=신남희씨는 대구 최초 민간도서관인 '새벗도서관' 관장을 1989년부터 맡고 있습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신 관장이 앞으로 수많은 도서관 책들 가운데 좋은 책, 아름다운 책을 소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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