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거울」/ 김춘수

거울 속에도 바람이 분다.

강풍이다.

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고

방축이 무너진다.

거울 속 깊이

바람은 드세게 몰아붙인다

거울은 왜 뿌리가 뽑히지 않는가.

거울은 왜 멀쩡한가.

거울은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비춘다 하면서도

거울은 이쪽을 빤히 보고 있다.

셰스토프가 말한

그게 천사의 눈일까.

허무와 불안의 러시아 철학자 셰스토프는 천사란 온몸이 눈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천수관음이다. 천수관음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다. 천 개의 손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이 있다. 거울의 상상력은 식민지 시인 이상의 자의식에서 뚜렷하게 팽창하였지만, 삼국유사 앵무설화편에서도 거울에 대한 의식은 있었다. 거울의 상상력은 고대에서부터 시작하였으므로 김춘수의 「거울」은 그 상상력에 곧장 이어진다. 거울의 밖, 현실은 지금 태풍 속이다. 거울 안은 어떨까. 거울 안은 물론 시인의 영혼이 기거하는 곳, 그곳에서 현실을 천 개의 눈으로 쳐다보는 시인의 마음이 다가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이 주제가 아니라 거울을 수 없는 눈으로 읽는 시인의 마음의 긴장성, 그것이 더 큰 주제가 아닐까. 평생을 내내 냉정하고 긴장된 시선을 가진 시인의 맑은 눈동자를 떠올리면 거울 밖에 또 무엇을 더 생각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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