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규직 전환 약속은 '헌신짝'…취업 어려워 '벙어리 냉가슴'

"요즘 4대 보험 되는 곳은 거의 없어요. 점심도 본인 부담인 줄 알죠." "정규직 전환은 약속했지만 원청업체가 예산을 줄여 해고할 수밖에 없네…."

근로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생계수단을 뺏기고 차별당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근로자들을 생존의 한계로 내모는 현실에 대해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당장 뾰족한 대책이 없다. 고용시장은 업주들의 인식부족과 정부의 친기업정책 등이 맞물려 암울한 상황을 맞고 있다.

◆'돈 없다!' 한 마디에 꼼짝 못해요.

한 중소규모 공장에서 단순노동을 하는 김모(42)씨는 평일엔 오후 6시 30분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법에서 정해놓은 월 최저임금(약 83만원)을 받지 못한다. 회사는 주5일 근무제도 무시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공휴일에 일 시키는 것도 다반사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따져봐야 "김씨는 법을 잘 아는 모양인데 나가서 법 쪽 일이나 하지 그래"라는 비아냥만 돌아온다. 김씨는 "그만두면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 힘든 점을 잘 아니까 사장은 법 위반쯤이야 신경도 안 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모(29)씨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다이어트 제품 광고메일을 보내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일당을 고스란히 날렸다. 업체는 일을 시작한 지 5일 만에 "홍보 효과가 없으니 그만두라"며 해고통보를 한 후 일당까지 떼먹었다. "담당 직원은 '월급을 준다고 했지, 5일간 일한 수당은 얘기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지역 한 대학교에서 청소일을 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모(60·여)씨는 최근 아무 이유없이 해고됐다. 용역업체를 새로 입찰하는 과정에서 발주 금액을 줄이면서 용역업체가 사람을 줄였기 때문이다. 보육교사나 장애인 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 근로자들의 급여도 최저 임금(월 83만원)을 훨씬 밑돈다.

◆정규직 전환 모르겠는데?

이모(44)씨 등 50여 명은 지난 1월 6개월 가까이 다니던 일자리를 하루 아침에 잃었다. 경남 창원에 있는 회사는 "대구에 공장을 짓고 있다. 6개월만 근무하면 근무지를 대구로 옮겨 주겠다. 정규직 전환도 해주겠다"고 약속해 창원까지 출·퇴근 해오던 차였다. 그러나 업체는 6개월 기한을 보름 앞둔 시점에서 "다음주부터 출근 안 해도 된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이씨는 "업주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고 빚을 내 겨우 입에 풀칠해 왔는데 이제는 뭘 먹고 사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학 졸업 후 영어학원에 취업한 황모(28)씨는 그 기쁨을 8개월 만에 접었다. 학원이 황씨에게 제시한 월급은 24만원, 나머지는 수험생 유치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학원측은 "6개월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급여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구직자 울리는 허위 구인광고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속이는 허위 구인광고도 구직자를 울리고 있다.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그럴듯한 조건을 내세우는 곳이 많지만 실제 터무니없는 조건을 강요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실직 후 재취업에 목을 매던 장모(51)씨는 생활정보지 구인광고란을 본 뒤 산소발생기 판매 기업에 취직했다가 피해를 봤다. 관리직이라고 했던 업무는 영업직이었고 업주는 "330만원어치를 팔아야 월급 74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장씨는 자신이 2대를 구입한 뒤 겨우 월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 2달만에 그만뒀다.

최모(44)씨는 최근 배달직 모집에 응했다가 사기까지 당했다. 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채용 전 보증보험에 들어야한다며 돈을 요구했고 최씨는 20만원을 건넸지만 업체는 문닫고 없어졌다. 자신 말고도 20여명이 같은 식으로 피해를 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대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불경기일수록 약자인 근로자들의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대구일반노조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인 김세종 노무사는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등에 대한 행정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며 "불황을 틈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도 문제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배일 대구민노총 본부장은 "대구는 2·3차 하청업체가 많은 특징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고 원하청 업체간 불공정거래는 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여서 정부와 대구시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