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대학과 책]'독일, 통일 이후가 문제였다'

이덕형, 김수정, 송윤희 공저, (경북대학교출판부, 2007)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설마하며 마음 졸이던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미국, 일본과 공조하여 조치를 취한다고 부산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에 사람들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주민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세계를 위협하여 식량을 빼앗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북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 쇼는 세계 체제의 일원으로 편입하고 싶다는 메시지일 뿐입니다. 독립국가로서 대화와 협상의 자격을 갖추려는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이번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국제사회 어느 국가도 북한의 행위를 제재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독립된 개별국가로서의 조건과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북한을 보는 세계인의 시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전략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반쪽인 '북한'이 아니라 완전한 독립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주적 북한'이 아니라 국제법을 준수하는 국제사회의 한 구성국 '조선'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종착점입니다. 조만간 한반도가 두 개의 완전한 독립국가로 분리될 것이지만 이는 통합이나 통일을 위한 과정입니다. 통합이나 통일 자체도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세상'입니다. 그 방법을 이야기한 책이 있습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소개한 책이 있습니다. 통일 독일 지식인 논쟁을 다룬 이덕형 교수의 '독일, 통일 이후가 문제였다'(경북대학교 출판부, 2007)입니다.

책은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라는 멍에를 진 독일 지식인의 죄책감, 절망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실패와 1929년 세계대공황시기, 독일사회는 절망의 철학이 중산층의 현실적 절망과 조우하던 때였습니다. 그 절망의 시기에 민족과 종족에 대한 비이성적 예찬이 환멸에 빠진 대중을 사로잡았고, 지도자를 통한 놀라운 절망의 구원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전염병처럼 창궐했습니다. 마침내 비합리주의는 파시즘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역사의 업이 지금까지 지식인들을 자학적 사관에 가둔 것입니다. 그러나 1989, 90년의 대전환은 독일사의 특수성을 와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고, 독일 지식인들을 정상적인 역사, 정상적인 국가지향으로 전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로 우파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목소리는 1986년 6월 6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에 실린 베를린 자유대학의 역사학자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의 '사라지지 않으려는 과거'가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써 놓고도 연설할 수 없었던 이 연설문은 독일의 과거가 다른 나라의 과거와 같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과거 일에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과거는 모든 과거가 다 그렇듯이 일단 '흘러가 사라질'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과거는 과거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과거'를 둘러싼 논쟁의 또 다른 끝에는 귄터 그라스가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부터 한결같이 독일의 재통일을 반대해 왔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기억하는 자라면 통일 국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 그는 '국가국민'의 대안으로 '문화민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문화만이 영토적 경계선에 얽매이지 않고 전 독일을 하나로 어우를 수 있으며, 유럽의 통합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 지식인의 논쟁은 독일발전에 귀결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 통일은 과거를 잊는 동시에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었고, 지식인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열정적 논쟁은 통일 독일을 강국으로 부활시켰습니다.

노동일(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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