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어에는 의류에 관한 재미있는 말들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 한복에는 멋으로 길게 늘여뜨리는 옷고름이 있는데, 이 '고름'이 일본으로 가면 그냥 '옷'이란 말의 '고로모'(衣)가 된다.
'소매'는 '소데'(袖), '바늘'은 '하리'(針), '베틀'을 '하타'(端), '누비다'는 '누우'(縫う), '무명'은 '모멘'(木綿), '모시'는 '무시'(苧), '갓'은 '가사'(笠), '사발'은 '사라'(皿), '기와'는 '가와라'(瓦), '가마'는 '가마'(釜), '남비'는 '나베'(鍋), '굽다'는 '구베루'(燒る), '구리'는 '가네'(銅), '납'은 '나마리'(鉛), '철'은 '테쓰'(鐵), '사슬'은 '쿠사리'(鎖)로 이런 말들은 먼 고대에는 전부 똑같은 발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봄이다. 밖에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고, 연한 잎을 싹티우는 능수버들이 한들거리고 있다.
이 능수버들을 일본어로는 '야나기'(柳)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우리말의 '연한기'이다. '연한 나무', 이런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밖을 보고 있노라니 고향 냇가의 버들이 생각난다.
"그렇지! 이 맘 때였어. 뒷산에 가서 '남기'해 오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소쿠리를 가지고 뒷산으로 갔었지."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나의 어린 시절! 국민학교 1, 2학년 때쯤이었을까? 지금은 기억도 어사미사하다.
고대의 백제나 신라시대와 정경이 꼭 같았던 그 시절! 긴긴 겨울밤 등잔불을 켜고 공부할라치면 늑대들이 떼지어 마을로 내려오고 그럴 때면 강아지들은 마루밑으로 기어들고, 으스스한 울음소리 때문에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밖에도 안 나갔던 그때 추억이 생생하다.
그 중에서도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는 추억이 있다면, 그것은 호랑이와 단 둘이서 맞부딪친 사건이다. '남기'하러 뒷산의 계곡으로 가서 혼자 솔방울을 줏다가 뭔가 섬칫한 느낌이 들어 위를 쳐다보니, 3, 4m나 되는 절벽 위쪽의 옆으로 누운 소나무 뒤 바위에서 송아지만한 호랑이가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줄무늬가 있었고 이글거리는 눈초리는 단번에 압도당할 만한 위세였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위기에 오싹하면서도 솔방울을 불끈 쥐고 함께 노려보면서, 살살 뒷걸음질쳐 용케도 무사히 도망쳐 나왔던 그때가 마치 꿈만 같다. 아마 그 호랑이는 필경 배가 안 고팠던 것일 게다.
나는 가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까짓거 뭐?' 라고 생각한다. '호랑이한테서도 벗어난 나인데' 라는 자부심이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자연도, 언어도, 그리고 나도 지금은 너무나 변해 버렸다.
"나무를 '남기'라고 했지-. 그래서 '야들야들하게 흔들리는 연한 나무'를 '연한남기⇒연한기'가 된 거고, 그 '연한기'가 변해서 '야나기'가 된 거야. 음, 과연! 그러고 보니 나무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지은 멋진 이름이구먼! 그런데 어째서 우리말의 '연한기'는 '버들'로 바뀌었을까?"
그 연유는 좀 더 알아봐야 할 일이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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