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말기 독일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 약 2만5천 발의 V1, V2로켓 폭탄을 날려 보냈다. V1은 폭약 850㎏을 싣고 최고 속도 645㎞로 비행할 수 있었다. 1944년 6월부터 약 2만2천 발이 영국으로 발사돼 5천126명의 사망자와 4만5천731명의 사상자를 냈다. 폭약 무게 1t 시속 5천760㎞로 성능이 개선된 V2는 6천여 발이 생산돼 3천172발이 발사됐다. 이 중 1천54발이 영국에 떨어져 사망 2천754명, 부상 6천523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V로켓은 영국인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속도와 명중률이 모두 낮아 실질적인 타격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V1은 3분의 1 이상이 영국 전투기의 요격으로 격추되거나 영국 해안에 닿기도 전에 추락했다. 나머지 3분의 1도 전쟁과 관계없는 영세중립국에 떨어졌다. 속도가 빠른 V2도 영국 전투기의 요격에서는 벗어났으나 1발당 사망자가 2.6명에 불과할 정도로 명중률이 낮았다.
V로켓의 명칭은 '보복 무기'를 뜻하는 '페르겔퉁스바펜'(Vergeltungswaffen)의 첫 글자를 따 히틀러가 지은 것이다. V로켓은 전세 역전이 아니라 연합국에 대한 보복을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V로켓은 복수심에 불타는 히틀러의 마지막 발악이자 독일 국민을 속이기 위한 '쇼'였던 것이다.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 실력자들은 이를 확인해주었다. "V2는 선전 효과를 의식해서 생산한 것이며, 그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 무기는 독일 국민의 환심을 사려는 심리적 목적이 더 컸다."(V로켓 생산책임자 카를 브리다흐) "그렇게 많은 인력이 V로켓 생산에 묶여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치가 국민에게 기적의 무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국민 또한 어떤 방법으로든 이런 약속이 실현되기를 고대했기 때문이다."(독일 공군 2인자 에르하르트 밀히)
북한 김정일이 인민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는 3억 달러를 탕진해 벌인 미사일 '쇼'도 비합리적이긴 마찬가지다. 미국의 발사 실패 판정으로 대미 협상력 제고라는 목표는 일단 물건너가는 분위기이다. "강성대국 건설 승리의 첫 포성"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 자체가 북한 내부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말해준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의 불장난에서 V로켓 개발에 국력을 소진한 히틀러의 광기를 본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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