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 문을 연 가 종이 한 면을 온통 새카맣게 칠해 탄소 피막처럼 만든 최병소 선생의 작품과 강렬한 색면의 입체 구조물로 한글의 자모를 형상화한 이명미 선생의 작품을 초대해 개관전을 열고 있다. 작은 규모의 전시회지만 현대 미술의 궤적을 반영하는 결정과도 같은 작품들이어서 그 안에서 각자의 개성이 지닌 차이와 다름을 비교하며 음미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지난 시절 미학적 관습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기치로 내걸었던 현대 미술의 대표 청년들이었는데, 여전히 그때의 청춘이 부럽지 않을 열정으로 자신들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이 매우 대조적이지만 모더니즘 미학에 내장된 코드로 읽어본다면 이들 사이에 공통점도 많다. 최병소의 작품은 바탕 종이를 흑연이나 볼펜 등으로 칠해 전체를 메워가는 작업이다. 마치 백색의 모노크롬 대신 만든 흑색의 단색화 같기도 하고, 무엇을 그리는 것과는 반대로 (신문의 인쇄된 내용 등을) 지우거나 덮어 무(無)로 돌리는 행위로 읽히기도 한다. 결과만 본다면 단조롭겠지만 그 과정은 매우 지난한 '행위 작업'이다. 종이가 닳을 정도로 재료를 닦달해 남긴 것에 대한 현상학적 관찰은 자연히 그 행위의 과정에 대한 의미심장한 물음으로 되돌려진다. 개념적인 성격이 짙은 작업이지만 그러나 행위나 실천에 무게를 두지 않는 개념 미술에 반해 이 경우는 구도자적인 인내 없인 불가능한 실천이 전제된다. 정신적, 육체적 끈기를 환기시키는 이 단순한 작업의 미학적 상징물에서 실존 철학의 엄숙함마저 느낀다. 높이가 없는 얇은 종이 위에 공간의 재현도, 어떤 대상의 묘사도 문제되지 않고 오직 시간과 씨름하며 극한적 평면성에 가 닿는 그의 거의 강박관념 같은 금욕적인 조형 방식을 대하며 침묵과 노동이 일깨우는 무언의 메시지를 듣는다.
이명미의 작품은 컬러풀한 채색의 바탕 위에 마치 낙서하듯 기호나 그림, 글쓰기가 더해져 판타지를 자극한다. 이번에는 평면 캔버스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ㄱ, ㄷ, ㄹ'같은 형태의 입체적 구조물로 바뀐 변형된 캔버스(shaped canvas)를 제출했다. 표면의 색채라든지 무늬나 기호, 글자들은 그 자체로서 초현실주의의 즉흥성이나 추상표현주의의 회화적인(painterly)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원시적인 필적, 비작위적인 표현이 지닌 순수한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추구한다. 아동의 놀이 충동에 잠재된 자발성을 끌어내고 그 세계를 구현하는데 몰입과 집중이 드러나지만 인습적인 의도나 계획성과는 거리를 두려는 표현들로써 정서에 호소한다.
색면의 평면성에서 변형 캔버스의 형태로 다시 입체 공간을 탐색해가는 그의 작품을 대하면 다양성의 변주를 시도하는 자유분방함을 느낀다. 조형적으로 풍부한 표정과 몸짓을 통해 전해지는 독백의 언어로 동시(童詩)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국제적인 모더니즘의 한국적 수용을 통해 자신들의 개성적인 미학의 수립을 이뤄낸 작가들이다.
미술평론가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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