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를 맞아 외국어 능력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대구외국어고등학교에는 다른 고교와 비교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외국어 영재학급'이다. 특별함 속의 특별한 프로그램. 8일 대구외고에서 이뤄지는 영재 교육의 현장을 찾았다. 이 곳의 영재학급 학생들은 단순히 외국어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수업
이날 오후 7시 대구외고 멀티미디어실. 영어 영재학급의 '에세이' 수업이 시작됐다. 한 여학생이 담당교사인 미국인 다이애나 에켈만(27)씨를 보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에켈만 선생이 지난주 과제물을 내며 지시한 내용을 따르지 않았던 것. 대구외고 영재학급 고교 영어반 수업은 이처럼 보통의 고교 교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지각하는 학생도 속출했고 과제물을 출력 해오지 않는 등 아주 흔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수업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에켈만 선생은 학생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최근에 치른 시험에 대한 글'을 쓰도록 했다. 작문의 요소에 대해 가르치려는 의도에서였다. 10분간의 '분위기 풀기'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아이들에게 "작문의 3요소는 무엇일까요?"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답변을 이끌어냈다. 한 학생이 첫 번째 요소인 '주제'란 답을 맞혔다. 몇 번의 오답이 계속된 뒤에 에켈만 선생이 나머지 2가지에 대한 암시를 던지자 비로소 '작자'(Writer)와 '독자'(Reader)라는 답변이 나왔다.
바로 영재학급 수업의 가장 큰 특징인 '쌍방향성'이었다. 그녀는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발표를 유도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 하던 학생들도 어느새 분위기에 적응이 됐는지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발표했다. "자신의 소개서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문법에 오류가 있다", "개인적 내용이라 불편하다"라며 약간 껄끄러운 기분을 숨김없이 밝혔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며 오히려 반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실제 자신이 쓴 글을 서로 읽고 질문하는 분임 수업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진가가 드러났다. 영어 작문을 다른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질문을 던졌다. 그 내용에 웃는 학생도 있었고, 박수로 응대하는 학생도 나왔다. 서정은 담당교사는 "이번이 두 번째 시간이라 학생들이 아직 서먹서먹하다"면서 "서로 공동과제물을 진행하다 보면 많이 친해지면서 더욱 활발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수업은 8시 30분부터 문학(담임교사 매튜 보우만) 시간을 진행해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영재학급은 창의력이 우선
대구외고에서 운영하고 있는 영재학급은 중3 영어·일어 과정, 고1 영어·중국어 과정의 4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별로 현재 48명(중3 영어), 32명(중3 일어), 16명(고1 영어·중어)씩 교육을 받고 있다. 올해 경쟁률은 1.4~8.7대1. 대구시 전역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시지는 물론 범물동, 대곡, 칠곡에서 오는 학생도 있다'는 것이 대구외고 측의 설명이다. 재학 중인 학교에서 추천할 수 있는 인원이 '각 학교별 학급당 0.5명 이하'로 제한된 만큼 기본적으로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다.
외국어 영재학급이라고 무조건 외국어만 잘한다고 합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차 필기시험 통과 뒤에 치르는 2차 구술시험의 심사기준 때문이다. 서정은 담당교사는 "학부모들 중에는 '외국어 영재학급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만 잘하면 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원하는 영재상은 지능(창의성)도 있고 과제 집착력(성취력)도 갖춘 학생이라고 설명했다. 영어 영재학급의 최경수(16) 학생은 "영재학급 말하기 시험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몰라 뉴스를 챙겨 읽고 토론이나 논쟁용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 공부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학교 교육 밖에서 길을 찾았던 셈. 영어 에세이 담당교사인 에켈만 선생도 '영재학급 학생들은 매우 창의적'이라고 인정했다. 프로그램 속에 포함된 프로젝트 발표는 학생들의 과제 집착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대구외고 외국어 영재학급의 특징은 ▷학교·학원에서 제공하지 않는 교육과정 ▷차세대 리더 육성을 위한 특별 활동 등이다. 외국어 영재학급은 단순히 점수를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문으로 자기 표현력을, 논쟁으로 자기 논리력을 키우게 한다. 소설 공부도 단순히 해석이 아니라 주제를 깊게 탐구한다. 외부인사 특강이나 국회 방문(올해 예정), 각국 대사관과 공동으로 행사 주최도 한다. 모두 학생들의 인성을 키우고 문화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이다.
서 교사는 "해마다 학생·학부모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다.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끼리 모여 진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률은 9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영재학급 학생들은 사는 곳도, 다니는 학교도, 지원동기도 다들 다르다. 그러나 자유롭게 창의성을 키우는 수업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최경수(16·능인고 1년)군은 이번이 두 번째 영재학급이다. 지난해에는 중등과정으로 영재학급을 이수했다. 어린 시절을 호주에서 보낸 최군은 '한국에 온 뒤로 영어 회화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영재학급 지원 동기로 밝혔다. 중·고등 과정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최군은 "작년 수업은 매운 쉬운 편이었다. 올해는 말하기도 있고 수업 내용도 재미있고 자유로운 분위기라 좋다"고 말했다. "소설 수업에서는 평소 공부 때문에 읽지 못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홍다윤(16·대구외고 1년)양은 학교 정규과정에서는 제2외국어로 일어를 공부하고 있다. 굳이 영어 영재학급을 신청한 이유에 대해 홍양은 "영어가 약한 부분이 많아 공부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그래서인지 "영재학급 공부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수업이 재미있긴 하지만 조금 어려운 편"이라고 했다. 홍양은 영재학급의 장점으로 "외국인 선생과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다"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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