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대학과 책]'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

강진아 지음(창비, 2009)

금융위기로 처참하게 일그러졌던 세계 경제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회복되는 징조를 보인다고 합니다. 지난 2월 이후 일본 경제가 흑자 전환되었고, 한국 경제도 바닥을 치고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문학적인 수준의 내수 부양책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그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런던에서 개최된 G20회의에서 중국은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제도와 IMF 주도의 국제금융질서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지난 3월 존스 홉킨스대학교의 전략분석연구소에서 실시된 세계경제전쟁 시뮬레이션게임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를 제치고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명실상부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입지를 굳힌 것입니다.

역사 순환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과 100년 전의 아시아를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수천년의 문화 제국들이 '아시아 전제'로 치부되었고, 속속들이 유린당해 그 정체성까지 잃어버렸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억울한 점이 많습니다. 동·서양이 만났을 때 처음부터 갈등이 초래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정한 게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시아의 중심 국가였던 중국조차 영국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을까?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사실이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실, 그러나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사실을 강진아 교수가 '문명 제국에서 국민국가로'(창비, 2009)에서 풀어냈습니다.

흔히들 중국의 패배로 끝난 아편 전쟁이 아시아 개항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6, 17세기에 이미 중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은 정당한 교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1684년 대외무역이 합법화된 이후에는 동·서양 무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786년 통계를 보면 중국에 파견된 영국의 선박이 62척에 달했습니다.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가 유럽인의 생활과 문화를 바꾸었고, 중국 차에 대한 관세 수입이 영국 국가 재정의 10%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1800년 즈음에는 중국이 1인당 GNP면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앞질렀고, GNP 총량 면에서도 중국이 우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은 만성적인 대청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극단의 불법 처방을 감행합니다. 1729년 중국 정부가 취한 아편의 재배와 수입금지 조치를 무시하고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아편 무역을 조장한 것입니다. 그 결과 19세기 초반 매년 200상자 정도 수입되던 아편이 1839년에는 4만상자로 늘었습니다. 차 무역에서 중국이 벌어들인 막대한 양의 은이 아편 대금으로 빠져나가면서 중국과 유럽 사이에 무역 역조가 발생합니다. 1850년대에 이르렀을 때 중국의 1인당 GNP는 170달러로 하락한 반면, 유럽은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10%대의 고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결국 이는 아편 전쟁이라는 정치적 패배로 이어졌고, 이후 서구와 중국이 역전하면서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는 그야말로 열등하고 미개한 아시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근대의 갈림길'에 섰던 동아시아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강진아 교수는 제국주의로 상승한 일본, 반식민지로 바뀐 중국,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의 경험을 단순한 '과거'에 두지 않으려 합니다. 서구의 공격으로 실종되었던 '아시아'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공'과 '기미'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되던 동아시아의 국제 체제,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중국이 중화적 세계관을 청산하고 한족민족주의를 핵심으로 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강진아 교수의 글에서는 사학자의 글맛이 느껴집니다. 짧은 문구 하나하나에 수백년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읽는 이에 따라서 오묘한 세상 이치와 지혜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전환기에 나타났던 한, 중, 일의 각각 다른 발전 모델을 찾는 이도 있고, 국제관계 게임의 규칙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강진아 교수의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한반도의 '현재'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