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와줘요! 셜록홈즈' … 한국판 사설탐정시대 열리나

국가가 아닌 개인이 범죄나 사고 원인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셜록홈즈법'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민간조사제도'(일명 탐정) 도입을 위한 '경비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의원은 "실종자 찾기나 보험사기 등 각종 분야에서 수사 인력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 경찰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민간조사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 역시 지난 2월 "'민간조사법(가칭)'을 만들어 곧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민간조사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민간 단체들이 자격증을 부여하는 '민간조사관'이 탐정을 대신해 활동하고 있지만 법의 보장은 받지 못하고 있다.

◆셜록홈즈 뺨치는 전문가?

유우종(45)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은 지난해 11월 한 유명의류 수입회사의 부탁을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짝퉁'이 돌고 있으니 이를 추적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짝퉁 의류의 주요 판매처인 동대문시장에서 탐문수사를 벌인 지 일주일 만에 유 회장 일행은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공장에서 짝퉁 의류가 제조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한달음에 대구까지 달려와 잠복근무 끝에 사실을 확인한 뒤 경찰에 지금까지 수집한 각종 증거자료들을 넘기고 짝퉁 업체를 고발했다. 유 회장은 "수사권한이 없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경찰과 함께 현장을 덮쳐 이들을 형사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셜록홈즈 같은 탐정의 꿈을 키웠던 김경건(37·동구 입석동)씨는 2000년 '민간조사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사설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다. 별도의 생업이 있으나 주위의 부탁이 있을 때 '탐정'으로 변신한다. 가장 많은 의뢰는 보험사기 조사. 김씨는 "부상 정도가 경미한데도 병원에 입원해 '가짜 환자' 행세를 하는 피해자들을 추적해 달라는 청이 많다"며 "며칠간 병원 인근에서 지켜보면 결국 덜미가 잡힌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민간조사원' 일을 전업으로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아직 의뢰가 많지 않고 심부름센터나 흥신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불법을 요구하는 의뢰자가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민간조사관은 법의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의뢰인의 부탁을 들어줄 뿐"이라며 "현재 가장 의뢰가 많은 분야는 짝퉁 제조 등의 지적재산권 침해 관련 사건과 보험사기 사건"이라고 했다.

대경대 경찰행정학과 김정수 교수 역시 민간조사원 자격증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탐정'이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관련 법이 통과되면 정부가 탐정 자격을 인정해주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0년째 지지부진한 탐정법

현재 대구 지역에서 '민간조사원'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10여명 안팎이고 전국적으로는 1천500여명 정도다. 한국민간조사협회와 한국민간특수행정학회, 한국탐정협회 등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다. 유 회장은 "수사기법은 물론이고 민·형사법 등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 사이버범죄, 보험범죄, 조사방법, 지문감식 등에 대한 8주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을 치러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인기 의원이 발의한 경비업법 개정안은 민간조사관의 업무범위를 ▷미아·가출인 실종자에 한해 가족 의뢰에 의한 소재파악 ▷소재가 불분명한 물건의 소재파악 ▷의뢰인의 피해 확인 및 원인에 관한 사실 조사 등으로 한정했다. 사생활침해나 개인정보유출, 도청 등의 '불법'을 행할 때는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유 회장은 "OECD 회원국 중 탐정 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심부름센터나 흥신소 등이 행하는 각종 불·탈법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도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구·경북에서만 200여개가 넘는 심부름센터가 문을 열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3천여개가 넘는다. 이들은 '자영업'으로 분류돼 있어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아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유출, 불법 도청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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