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흡 가쁜 아들 돌보며 힘겨운 하루하루

근육위축증을 앓고 있는 여섯살 영훈이는 늘 까치발을 하고 걸어다닌다. 아킬레스건에 점점 힘이 없어지면서 발목을 지탱하기가 힘들다 보니 언제부턴가 발끝에 힘을 주고 걷는 것이 습관처럼 돼 버렸다. "그러면 안 돼"라고 혼을 내 보지만 그때뿐이다.

늘 까치발을 하고 다니다 보니 발등은 굽었고 종아리 근육만 발달했다. 자신이 무슨 병인지 모르는 영훈이는 "알통 보여줄까요?"라며 자랑처럼 바지를 걷어올렸다.

영훈이가 근육병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엄마 김지희(가명·43·대구 수성구 두산동)씨는 "한창 뛰어다닐 나이였지만 영훈이는 잘 뛰지 않았고, 계단 오르내리는 일을 힘들어했다"며 "이상하다는 생각에 세 곳의 병원을 전전해 결국 '뒤센형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로부터 고작 5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영훈이의 근육은 눈에 띄게 약해져 가고 있다. 예전에는 어렵게나마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난간을 팔로 붙들고 버둥대기만 한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넘어지지 않으려 팔로 난간을 붙들고 버티는 것이다. 호흡을 제대로 하는 일도 쉽지 않아 밤에는 호흡보조기를 사용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천천히 숨 쉬는 연습을 시켜보지만 자꾸만 호흡은 흩어지고 만다.

김씨는 "다른 근육병을 앓는 아이들보다 진행이 빨라 걱정"이라며 "근육이 약해지면서 점점 다리 뼈까지 휘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며칠 내로 서울 병원을 찾아 보장구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영훈이의 병이 심해지면서 단란했던 가정마저 깨져버렸다. 막일을 하면서도 영훈이의 간호에 정성을 기울였던 아빠는 어느 날 훌쩍 그들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영훈이의 병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원인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들은 뒤였다. 그 후에는 서산, 서울 등을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산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을 뿐이다. 김씨는 "그 사람도 영훈이 병에 적잖이 충격을 받아 그랬을 것"이라며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어 힘이 됐는데 이젠 혼자서 어떻게 영훈이 병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김씨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영훈이를 돌보지 못할 상황이다. 유치원이라도 갈라치면 업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지만 김씨는 아이를 업어줄 수가 없다. 교통사고를 당해 상반신 뼈 곳곳이 으스러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영훈이가 서울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후진하던 승합차에 치여 전치 12주의 진단을 받았다"며 "왼쪽 어깨부터 팔까지 죄다 부러진데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와 비장을 찔러 장시간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씨는 팔에 깁스를 하고 어깨에 철심을 박아놓은 상태다. 영훈이가 "엄마 안아줘"라고 등에 매달리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직 몸무게가 얼마 되지 않는 영훈이지만 김씨의 어깨에는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좀 더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지난주 부득부득 퇴원을 서둘렀다. 이번 주 영훈이의 병원 진료가 예약돼 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영훈이만 괜찮아진다면 더한 아픔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친정 언니의 좁은 빌라에 얹혀살고 있는 김씨는 아직 남편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근육병 환자들은 제 수명만큼 살기 어렵다고들 하지요. 영훈이도 언제까지 저렇게 제 발로 걸어다니고 혼자 숨을 쉴지 모르지만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게 해 주고 싶습니다." 김씨는 굽어버린 아들의 발을 애처롭게 쓰다듬기만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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