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거리에서 '도심'이라는 노인을 만났다. 예전엔 '향촌동과 동성로'라는 펄떡이는 심장으로 모여든 혈액(사람)을, '약전골목' '종로' '북성로'라는 혈관을 따라, '달성·국채보상·2·28기념·경상감영' 공원들로 뿜어내고, 1천개가 넘는 실핏줄 골목으로 요동치게 하는 건강한 젊은이였다. 하지만 불과 몇십년 사이 도시 외곽이 발전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보잘것없는 노인이 되고 말았다.
매일신문은 점점 늙어가는 대구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매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7개월 동안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심 곳곳을 누비며 실태를 파악했다. 맑은 날만 아니라 비 오는 날, 어두운 밤, 안개 내린 새벽을 걸어다녔고, 유모차를 끌고 도심을 횡단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앞선 사례들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중국을 찾았고 일본의 골목을 밟았다.
그 결과 대구 도심이 세계 어느 유명 도시 못지않게 높은 경쟁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성토성과 경상감영 4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점, 수백년 동안 읍성 안에 집을 짓고 건물을 만들면서 생긴 골목들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 흩어진 공원을 제대로 연결하면 전국 최대의 도심 녹지축도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은 어느 도시도 따라올 수 없는 대구만의 장점이었다. 여기에 공공디자인과 공공미술이 입혀지고, 흡입력이 강한 축제들이 여기저기 탄생하면, 문화창조발전소에서 터져나오는 에너지가 문화의 향기를 퍼뜨릴 수 있다면 대구 도심은 예전보다 훨씬 튼튼한 젊은이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적으로 도심재창조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이런 사실들을 대구시민, 경북도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시대적 요구로 다가왔다. 지난해 10월 15일 '대구 도심재창조' 시리즈 첫 회를 시작한 이후 7개월에 걸쳐 도심과 관련된 주제들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매일신문은 또 다른 시도에 들어갔다. 사업의 정확한 방향을 잡기 위해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워크숍과 자문회의를 틈틈이 진행했으며 시민들의 의식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도 벌였다. 도심에 사는 주민들의 진정한 요구를 듣는 심층조사와 북성로·향촌동에 대한 사례연구까지 방대한 작업을 수행했다. 시민들에게 도심재창조의 의미를 알리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아이디어와 디자인, 사진 공모전을 개최한 점도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사실은 '일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와 통한다. 이제 겨우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들의 수준에는 본격적인 도심재창조라는 표현을 붙이기가 불가능했다. 전문가들조차 연구를 본격화한 지 몇 년 되지 않다 보니 도심재창조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한 자료를 찾기 힘들었다. 도시의 축제, 공원, 문화유적, 쇼핑, 산업 등에 대한 연구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잘하고 있다는 도시의 현장을 찾아가 보면 태반이 전시행정을 요란스럽게 떠든 것들이었고 해외 사례를 무분별하게 베낀 곳도 적잖았다. 대구처럼 원도심이 온전한 형태로 남은 도시가 별로 없다는 점은 대구 도심재창조에 중요한 자산이지만 취재진에게는 난관이 됐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시리즈를 마치게 됐다. 특히 대구만의 도심 만들기에 애착을 갖고 연구와 실천을 하고 있는 분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취재진에게 더없는 행운이었다. 대구시의 도심재생 기본구상과 중구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이 시리즈와 비슷하게 진행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도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는 독자들의 성원은 최고의 활력제였다.
우리의 고민이 현실로 나타날 시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보다 깊이 있고 구체적인 2차 기획물 준비를 급하게 만들고 있다. 조만간 더 튼실한 기획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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