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칸만큼 헐리우드만큼 재미있는 곳 '2009 전주국제영화제'

'자유, 독립, 소통.'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09 전주 국제영화제'가 올해도 '자유, 독립, 소통'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오는 30일부터 5월 8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영화의 거리 내 극장에서 영화 팬들을 만난다.

디지털과 독립, 대안 영화를 통한 실험성에 주목하면서도 관객들과 꾸준히 소통해 온 전주영화제. 10회를 맞는 올해는 세계 영화 흐름 안에서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로운 소통을 시도한다. 올해 상영작은 42개국 200편. 이 중 장편 52편과 단편 33편이 아시아 또는 세계에서 처음 공개된다. 최근 새로운 디지털 영화의 영토를 개척하며 영화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필리핀 독립영화들을 대거 초청했으며, 그동안 신작 중심이었던 한국 영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2003년 이후 진행되지 않았던 한국 영화 회고전을 부활시키는 등 한국 영화의 과거를 기억하고 한국 영화 감독을 발굴하기 위한 자리도 마련했다. 또한 10회를 맞아 다양한 기념 행사도 준비했다.

정수완 수석 프로그래머는 "독립영화와 예술 영화를 발굴해 온 영화제로서 올해는 특히 신인 감독 발굴에 초점을 뒀다"며 "어렵다는 영화들을 관객들과 함께 공부하고 알아가는 영화제로서 그 성격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개막작은 '디지털 삼인삼색'과 함께 전주영화제가 제작비를 지원하는 '숏!숏!숏! 2009'. 전주영화제의 중요한 섹션 중 하나인 '숏!숏!숏! 2009'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 역시 '생산 영화제'로서 전주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 '숏!숏!숏! 2009'는 10명의 젊은 감독들이 '돈'을 주제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 전북이 고향인 이송희일 감독을 비롯해 충무로와 독립 영화계에서 자신들의 색깔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감독들이 10인 10색을 연출해 낸다. 스리랑카어로 '친한 친구'라는 뜻을 가진 폐막작 '마찬'은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데뷔작.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스리랑카 빈민가 청년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스리랑카의 문화와 현실을 접할 수 있는 기회.

화제작들도 많다. 특히 디지털 매체의 힘을 빌려 영화의 지속성을 극대화한 긴 영화들이 많다. 왕빙 감독의 '철서구'는 9시간 11분, 라브 디아즈 감독의 '멜랑콜리아'는 8시간, 라야 마틴 감독의 '상영중'은 4시간 40분이다. 반면 가장 짧은 영화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파국'으로, 러닝 타임이 1분이다. 복원된 작품들에 대한 국내외 영화계의 관심도 높다. 디지털 기술로 완전 복원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비롯해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 감독 작품을 쥬세페 베르톨루치가 복원한 '분노' 복원판 등도 상영된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사회정치적인 시각에 영화 미학이 결합되고,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가 모호해져 에세이적인 성격이 강해지는 등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주영화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삼인삼색'에는 한국의 홍상수 감독,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 감독이 초대됐다. 아시아 영화가 세계에서 좋은 평가를 얻으며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 다시 아시아 감독으로 눈길을 돌린 것. 특히 가와세 감독의 '코마'는 전쟁 이후 일본에 남아 살게 된 한국인들의 후손과 일본인 사이의 괴리, 만남, 조화를 그리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29일 저녁 전주시청 노송광장에서 열리는 '10주년 기념 전야제'를 시작으로 전주영화제 10년을 기념하는 행사들도 많다. 전주영화제와 관련된 중요 감독들의 데뷔작, 관객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전주영화제 수상 감독들의 신작 상영 등 '기념 상영 스크리닝'은 예매를 서둘러야 하는 프로그램. 지난 9년의 성과들을 정리하기 위해 10주년 기념 책자 '전주, 느리게 걷기'와 '디지털 삼인삼색 DVD 박스 세트'도 발매된다. 역대 영화제의 발자취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10주년 기념전'과 영화제작 원리를 몸으로 체험하고 영화 역사를 익힐 수 있는 체험관도 운영된다. 전주는 칸도 아니고, 할리우드도 아니다. 그러나 칸영화제만큼 의미있고 할리우드만큼 흥미로운 곳이 바로 전주영화제다. 특히 상영작이 그 영화제의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했을 때,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영화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도휘정기자 hjcastl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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