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상에 홀로 서니 춘풍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강우규는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유언으로 한시를 남겼다.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죽음을 앞둔 60대 노인은 단두대 앞에서도 나라 걱정이 앞섰다.
1859년 오늘 평안북도 덕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의학을 공부해 한약방을 운영하다 일제 강점 이듬해인 1911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북간도와 랴오허 현에서 독립운동을 모의했고, 지린성에 중학교를 세워 독립정신 고취에 힘을 쏟았다. 국내 3·1운동 소식을 듣고 3월 4일 만세시위를 벌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노인단의 지린성지부장을 맡아 일본 총독 암살을 결의했다. 그해 러시아인으로부터 영국제 수류탄 1개를 구입해 서울로 잠입, 9월 2일 남대문정거장(현 서울역)에서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비록 총독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37명의 사상자를 냈다. 안타깝게도 일제 앞잡이(김태석)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로 향했다.
우리는 과연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는가. 독립이란 대의 앞에 의연했던 강우규의 죽음에 외경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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