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새와 수면」/이정환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 속에 숨어 있던 수 천의 새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 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분홍 물갈퀴』란 이정환의 근작시집이 도착했다. 이 시집은 수많은 소리와 색조로 수런거린다. 시선이 맞닿은 「새와 수면」이란 작품은 풍경과 시간의 교차점을 복원했다. 한 행이 한 연이다. 한 행으로 줄어든 한 연의 말들을 복각해본다. 아니 처음부터 한 행이었다. 줄어든 말들이 없다. 풍경의 중심에 새 한 마리 보인다. 그 새가 돌연 솟구치자 새의 그림자를 섬세하게 담았던 물결들이 일제히 따라 허공에 솟구친다. 그림자들은 강물의 드센 힘줄처럼 따라 솟구친다. 숲 속을 산책하다 문득 치솟는 꿩의 날갯짓을 연상해보라. 꿩의, 날개의, 싱싱한 근육의 힘이, 온 산을 진동시켜 지척지간 몸에 다가오는 힘의 떨림들을 기억하라. 그러니까 시인은 저만치 강물 위의 새를 보지만 그 새가 날아오를 때 숲 속 꿩의 드잡이질 치는 힘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만지고 있다. 원근이 교차한다.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 새가 교류했던 강물과의 정서 합일이 새를 따라가면서 치솟게 하는 물결의 역동성을 떠받쳤던 것. 만상이 서로 간섭하고 길항하는 풍경의 선연한 단면 위로 시인의 시선이 정확하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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