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오 기자님 저 DJ투컷인데요, 보도자료를 보냈어요."
"아니 왜 투컷씨가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이제 우리가 직접 음반 만들고 홍보하거든요."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신선한 행보가 음악계 안팎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최근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레이블 '맵더소울'(Map the Soul)을 차리고 홀로서기를 했다. 이들의 행보는 단지 자신들의 레이블을 만든 것에 그치지 않았다. 기획사의 홍보에 기대지 않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레이블을 운영하고 음악까지 알리고 있다.
최근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사이트 '맵더소울닷컴'(mapthesoul.
com)도 오픈했다. 사이트를 통해 북앨범 형식의 신보 '혼(魂):맵더소울'(Map the Soul)을 직접 판매하고 있다.
"전형적인 유통과 판매망을 거치면 아티스트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격이 높아져요. 이번 음반은 제작 규모 때문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작품의 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팬들에게 부담되는 가격은 싫어요. 거품을 최대한 빼고 가격을 내리기 위해 직접 판매'유통하기로 했어요."(DJ투컷)
물론 이 같은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이들은 매일매일 쏟아지는 일들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사이트를 오픈한 날에는 방문자 폭주로 사이트가 마비됐다. 폭발적인 방문자 수를 예상치 못해 생겨난 일이다.
"물론 쉽진 않아요. 제가 홍보 담당자라 하루에 전화를 100여통씩 받습니다. 뭐 순조롭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굴러가요. 매일매일 새로운 '사고(?)'에 직면하긴 하지만 우리의 일이니까 기꺼이 하고 있죠."(DJ투컷)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해외에서 앨범을 구입하려고 할 때 카드 결제는 되는데 현금 결제가 안 되는 겁니다. 팬들의 항의가 들어오고요, 그럼 우린 또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죠. 그런 예상치 못한 사고에 그때 그때 대처를 해야해요. 매일 전쟁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 자체가 성공이라고 봐요. 우리 마음속으로는 이미 성공을 했어요."(타블로)
스스로 만들고, 유통까지 하고 있는 신보는 에픽하이의 결성 초기 음악처럼 정통 힙합에 가깝다. 팬들의 사랑을 받은 에픽하이 노래에 주로 등장한, 귀에 쏙 꽂히는 멜로디 라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
"1집 스타일의 음악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1집은 사실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때는 무엇이 되는 음악인지 몰랐습니다. 순수할 수밖에 없었죠. 2집부터 우리가 내는 곡들이 다 히트를 치니까 우리도 모르게 어느새 공식에 갇히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지 알지만 그런 생각을 버리고 만들어 봤어요."(타블로)
에픽하이가 이번에 선보인 정통 힙합을 음악을 낯설어 하는 팬들이 많다. 에픽하이 스스로도 "수치만 봐도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심각한 불경기 때문에 너도 나도 대중적인 음악을 하겠다는 판에 오히려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저의가 궁금했다.
"회사가 끼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스스로 만든거니까 대중성에 대해 신경을 안 쓰고 음악을 했어요. 이번 음반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한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이런 작업을 해야 했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우리가 음악을 하는 게 돈 때문이 아니니까요. 음악을 사랑해서 하는 것이니까 우리 스스로의 자세가 중요한 거라 생각합니다."(타블로)
에픽하이는 이번 앨범의 쇼케이스를 홈페이지에서 열었다. 쇼케이스는 홈페이지에 온 모든 팬들에게 동영상으로 공개됐다. 한정된 매체와 한정된 팬들에게만 보여 줄 수 있었던 기존의 쇼케이스 관행을 깨버린 시도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공개하고 팬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팬들은 에픽하이의 이런 모험적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에픽하이 역시 팬들이 없었다면 절대 이런 시도를 할 수 없었기에 사이트가 다운되도록 성원을 보내주는 팬들의 존재가 새삼 고맙다.
"사이트를 통해 우리와 팬들이 정말 가까워졌습니다. 지난 6년 동안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어요. 지금까지는 사랑을 받기만 한 막돼먹은 애들이었는데 지금은 이 팬들과 평생 가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타블로)
새로운 시도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에픽하이는 음반 홍보도 새로운 방식으로 한다. 예능 프로그램과 순위를 매기는 음악 프로그램에는 나가지 않고 라디오와 인터뷰, 공연 등을 통해 음악을 알리고 있다.
"이번 앨범은 정규 앨범이 아니니까요. 일단 순위 프로그램에는 정규 앨범 활동을 할 때 나가겠다고 말했어요. 물론 TV에 출연하는 게 홍보 효과는 크죠. 하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예능 프로그램과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소비하는 시간을 팬들에게 쏟고 있죠. 팬들 역시 이번 앨범만큼은 이해를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타블로)
에픽하이는 월드투어 공연도 시도하고 있다. 한류 붐을 일으키러 가는 것도 아니고, 동포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펼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국의 힙합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외국의 뮤지션과 소통을 하러 떠나는 것이다.
"'월드투어'라고 하면 흔히 한류를 떠올리죠. 그런데 우리는 한류와 상관이 없어요. 한류 붐을 타고 가는 게 아닙니다. 한국의 힙합신이 우리나라에서만 인정을 못 받는 것이지 사실 실력이 뛰어나요. 바비킴이나 윤미래, 드렁큰타이거 같은 힙합 가수는 정말 실력이 있죠. 우리에게 기회가 생겼으니까 한국의 힙합신을 열심히 소개하려 합니다. 우리나라 힙합 신도 주목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어요."(타블로)
'월드투어' 일정에 대해서는 말없이 앉아 있던 미쓰라가 조용히 다이어리를 꺼내 알려준다. 이들은 지난달 28일까지 일본 고베와 도쿄 공연 후 한국으로 건너와 다음달 서울(2일, 멜론 악스홀)에서 팬들과 만난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15일)'LA(16일)'시애틀(23일)'뉴욕(22일)에서 공연한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도시에서의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음반 직거래, 실력으로 승부하는 월드투어, 온라인 쇼케이스…. 에픽하이의 행보는 파격적이고 진보적이다. 자본을 투입한 물량 공세가 아닌 음악으로만 승부를 하겠다는 에픽하이의 시도인 것이다. 많은 팬들은 이들의 시도가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기획력으로 장악된 한국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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