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적인 관습을 치르듯이, 전직 대통령의 불명예스러운 기사가 뉴스거리로 지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한국의 자살률이 OECD 30개 국가 중에서 3위, 그 중 여성의 자살률이 1위라는 며칠 지난 기사가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나 자신과 더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이고, 더욱이 여성이고, 어떤 바람직한 변화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지 않는 한 나와 비슷한 운명을 갖게 될 확률이 높은 딸을 가진 엄마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비록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더라도,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 되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개그처럼, "너 미친 거 아냐?" 소리를 듣더라도 한번 외쳐보고 싶은 심정이다.
우선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왠지 씁쓸하다. 별로 영향력도 없어 보인다. 그건 소나 닭도 다 아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의 삶 속에 참교육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우리 사회가, 혹은 우리 모두가 벌여 놓은 수습조차 어려운 이 현실들 가운데 과연 '교육'은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교육은 어디에 있는가? 하루의 일과에서 찾아보자. 우선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이를 닦으며 우리는 칫솔과 치약을 사용한다. 그것뿐 아니다. 비누도 사용하고 로션도 바르고, 곧 이어 옷을 입고 버스나 지하철, 혹은 자동차를 타고 각자 하루의 일터로 출발한다. 아, 핸드폰도 챙겨야지. 내 삶의 환경은 온통 번영하는 과학의 축제장이요, 나는 분명히 그 문명의 수혜자이다. 우리의 삶을 이토록 용이하게 해 주는 '과학 교육'의 학문적 결과물들 덕분에 '교육'이라는 말이 우리의 일상에 잠시 나타난다. 그러나 '교육'은 단지 학문적 결과물보다 훨씬 상위의 개념이다.
그런데 교육이 눈에 보이는 어떤 위대한 결과물보다 상위의 개념이라는 그것이 바로 문제다. 상위의 개념일수록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런 것이다 라고 설명하면 할수록 교육이 오로지 삶의 도구로만 이용되는 현실과 멀어져 갈 뿐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어리석게도 또 이렇게 반복한다. "교육은 '나와 너'가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이해의 과정이다… 우리는 분명 함께 살지만 하늘이 나에게만 내려 준 개인적 성품을 인정받고, 인정하는 과정을 통하여 긴긴(과학의 힘으로 더 길어진) 희로애락이라는 삶의 순환에 기꺼이 개입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삶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나는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고, 철저히 他者(타자)가 될 수도 있다. 내 思考(사고)의 깊이를 발견하고 내심 자존감을 느끼며 기쁠 수도 있고, 감추고 싶을 만큼 편협한 내 모습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기계가 해줄 수 없기에(아직은?)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경험하면서 판단의 내공이 쌓인다. 교육은 그야말로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말해놓고 보니 생존의 현실 앞에서 교육이 또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우리 모두 슬쩍 숨긴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숨겨졌을망정 어딘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방향을 밝혀주는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학교교육, 대학입시교육, 도덕교육, 인성교육, 영재교육, 특수교육 등 다양한 교육이 있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의미의 교육에 딸린 부수적인 과정일 뿐, 교육 전체를 의미할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생존의 문제만을 크게 浮刻(부각)하여 한 사람의 존재가 사회 저변으로 소리없이 은폐되는 일은 교육이 의도한 일이 아닐지라도 한 번쯤은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할 일이다. 죽음은 때때로 많은 부조리를 정화한다 하지 않는가?
박인덕 계명대 강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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