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면목 없다"면서 "아니다, 모른다, 기억 안 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 먼 길을 달려 출두한 대검찰청에서 13시간 피의자 조사를 받고 오늘 새벽 6시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검사와 마주한 긴 시간 동안 "아니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로 일관했다고 한다. 예상했던 대로 서면답변을 통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그대로 같은 답변을 되풀이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대질신문도 거부했다고 한다. 검찰의 계속적인 대질 요구를 뿌리치다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박 회장을 불러 서로 얼굴만 보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보통 뇌물사건에서라면 받은 사람이 버틸 경우 준 사람과 대질을 통해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수사원칙이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대질조사는 피할 수 없는 절차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집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전화를 걸어와 100만 달러를 주었다는 게 박 회장의 진술이라고 한다. 그 뒤 돈을 보내 줘 고맙다는 감사 전화도 있었다는 것이다. 20년 지기라는 박 회장이 없는 얘기를 지어내 노 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다고 보기 어려운 구체적 내용들이다. 이 무렵 아들 건호 씨와 딸 정연 씨가 30만 달러를 송금받은 사실을 검찰이 새로 확인했다고 한다. 두 돈의 연관성을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추궁하는 것은 형사법정에 세우기 위한 것이다. 600만 달러가 뇌물인지,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천만 원 횡령에 개입했는지에 대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내려는 것이다. 국민 여론법정에서는 이미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여론조사는 '재임 중 돈 거래 알았을 것'이라는 응답이 4명 중 3명이다. 이미 배신감을 안긴 마당에 더 이상 국민을 속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것은 두 번 죽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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