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밥이란 말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식구(食口)라는 말의 형상을 생각해보라. 배고픔이야말로 혹독한 아픔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자의 시선에는 모든 만상이 먹을거리이다. 배고파 가만히 누워 있으면 집이 밥그릇이고 방이 밥그릇이고, 누워있는 나는 또 누군가의 밥이다. 서로가 서로의 먹을거리라는 슬픔! 그대와 같이 나란히 누워있는데 그대에게서 밥냄새가 난다면 나는 그대를 먹을거리로 혹은 밥냄새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 것이리라. 마침 내 옆에 누운 당신에게서 밥냄새가 나네. 눈물의 냄새도 난다네. 그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