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부터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치매나 중풍 등 중증 질환을 앓는 노인들이 대거 요양시설을 찾고 있다. 인생의 '종착역'인 노인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는 노인들은 자식 자랑과 자식 걱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버이날을 맞아 이들의 하루를 살펴봤다.
◆그래도 자식사랑뿐
7일 오후 찾은 남구 이천동의 노인요양시설 '여래원'. 붉은빛 황토염색을 한 단체복 차림의 할머니들이 넓은 거실에 여기저기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당수는 치매를 앓았고 일부는 치매와 중풍을 함께 앓고 있었다.
정신은 오락가락해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아들, 우리 딸, 우리 손주"로 시작하고 끝났다. 대화는 중구난방이었다. 자식 자랑을 하다가도 "아들 얼굴 본 지가 10년은 된 것 같다. 이놈은 엄마를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고 느닷없이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일방적으로 자식 자랑, 자식 욕을 늘어놓는 식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한 할머니는 "만호야(가명)!"라며 이방 저방을 돌아다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이 할머니는 다른 사람 이름과 얼굴은 다 잊어버려도 아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전 아들이 면회를 왔다 갔지만 그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아들이 보고싶다"며 하루 종일 아들을 찾았다.
요양보호사들이 '내일이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주자 갑자기 한 할머니가 딸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보챘다. 웃고 떠들며 기분 좋게 지내던 할머니는 갑자기 "억수로 아프다. 얼른 와라"며 꾀병에 어리광까지 부렸다.
이모(84) 할머니는 어제 왔다간 아들이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준 돈을 꺼내들고 친구들을 자판기 앞으로 불렀다. 할머니는 "우리 아들이 2만원 주고 갔다. 내 율무차 한잔씩 사주께"라며 인심을 썼다. 할머니들의 일상은 코흘리개 아이들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나 늙는다.
현재 59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여래원의 일과는 오전 7시 시작된다. 요양보호사들이 노인들을 씻기고 밤새 흘린 대소변을 처리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노인 중 70% 이상이 기저귀를 사용하기 때문에 빨래만 해도 엄청나다. 이곳은 황토 염색한 천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어 하루 종일 5대의 대형 세탁기가 1천여개의 기저귀를 빤다.
낮 시간에는 월요일 음악치료, 화요일 미술치료, 목요일 원예치료, 금요일 놀이활동 등 하루에 한 번씩 특별활동이 진행된다. 나머지는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하거나 낮잠을 잔다. 라혜경 사무국장은 "다른 시설은 실종 문제 때문에 출입문을 잠가 두는 곳도 있지만 이곳은 마음대로 산책 정도는 할 수 있다"며 "실종을 방지하기 위해 옷 자락에 센서를 달아놓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노인 3명당 1명씩 배치된 요양보호사 외에도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한 달에 두 번씩 이발 봉사를 한다는 강승철(62)씨는 "처음에는 할퀴고 쥐어뜯는 할머니들로 인해 곁에 가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죽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머니들의 친구가 돼 '왜 즐겁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린아이가 돼 버린 노인들의 '엄마' 노릇을 자처한다. 씻기고 밥을 떠 먹이는 기본적인 것부터,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우는 할머니들을 말리고 함께 노래를 불러주거나, 보행기 걷기 등의 재활 연습도 함께한다.
내 부모도 모시기 힘든데 하물며 남의 부모야 오죽하랴. 김정화(54) 요양보호사는 "오히려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니 편한 부분도 있다"며 "어르신들과 지내다 보면 나도 언젠가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에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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