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그 귀하다는 미선나무가 안동의 한 산자락에 자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이 오면 그 귀하디 귀한 자태를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말로만 듣던, 이름조차 어여쁜 미선나무를 내 사는 안동에서도 볼 수 있다니. 그것도 생짜로 말이다. 나는 무슨 마음에 품은 정인을 기다리는 듯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다. 그 예쁜 꽃으로 맞이할 올봄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마음 설레기까지 했다.
그 귀한 정보를 제공한 벗으로부터 듣자하니, 우선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며, 개나리를 닮은 꽃은 흰색이고 꽃가지는 드물게도 보라색이라는 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씨앗이 둥근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아름다울 미, 부채 선, 미선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자생지가 많지 않고 또 알려진 곳은 이미 훼손의 정도가 심해서 자연스러운 미선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안동의 미선나무 자생지가 귀한 것은 그나마 사람 손을 덜 타서 알음알음으로 숨겨두고 볼 만하다고 귀에 은근히 눌러두는 것이었다.
봄은 시나브로 지나가고 말았다. 마당가에 핀 매화를 볼 때도, 강변에 흐드러진 벚꽃이 필 때도, 어느 집 울타리에 개나리가 지천으로 뿅뿅 피어날 때도 마음은 미선나무가 핀다는 그 산자락으로 이어져 있었다. 진달래가 필 때나 철쭉이 만발할 때도 미선나무가 있다는 그 산을 뒤로하고 다른 산만 오르내렸다. 개나리가 필 때쯤이면 핀다는 미선나무를 철 지나도 한참 지나 이팝나무꽃이 만발한 지금도 그리워만 하고 있다.
잘한 일이다. 평소 꽃 욕심이 많은 내가 미선나무를 만나러 갔다면 필경 무슨 사단이 나도 났을 것이다. 뿌리째 뽑아 검은 비닐에 둘둘 말아 숨겨 왔을지도 모른다. 그도 양심에 받쳐 못할 일이었다면 한두어 가지 꺾어 들고 왔을 것이다. 개나리처럼 꺾꽂이, 휘묻이가 가능하다는 정보 또한 입수해 둔 터였으니 오죽했으랴. 평소 그런 사람을 혐오하는 나이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으리라. 보고 싶어도, 그리워도 꾹꾹 눌러두고 온산에 지천으로 핀 진달래나 철쭉을 보러 다닌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내가 꽃 도둑 심보를 지닌 위인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지난 4월 4일의 일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문인단체 이사회를 하러 서울에 갔을 때다. 도종환 시인과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도벽을 자극하는 꽃을 만나고 말았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화단에 노랑, 하양, 보라 삼색으로 된, 팬지 같기도 하고 제비꽃 같기도 한 조그마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한 포기를 훔쳤다. 이송 과정도 드라마틱했던 그 꽃은 지금 우리 마당가에서 피어 있다. 어쩌면 미선나무를 보러갔다면 재수에 옴 붙은 몇몇 그루는 지금쯤 탐욕스런 내 화단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선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안동의 남쪽 산에 있는 그곳도 사그리 없어지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나 같은 놈의 꽃 도벽을 법으로라도 막아주면 좋겠다. 미선나무, 지금쯤 부채를 닮은 열매로 설렁설렁 부채질하며 초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을 것이다.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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