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떠밀리듯 주춤거린다
걸어온 날들이 고스란히 푸른 낙인을 찍고
저울추에 매달린다 너무 무겁다
거기 그 지독하던 상처들이
찰거머리처럼 꿈틀거리며
시인은 삶의 단면을 정육점 냉동실에서 꽁꽁 얼려서 금방 우리에게 배달해준다. 정육점은 1980년대 후반 이래로 시인들의 주요한 탐색지대이다. 정육점에 걸린 고기와 붉은 조명은 끔찍하고 직설적인 당대의 현상이어서 시인들은 고기를 씹거나 비판하거나 고기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박남준의 고기도 예외가 아니다. 말하자면 그 고기는 바로 시인 자신이라는 점에서 앞선 시인들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적을 수 있다. 여기서는 고기/일상의 철저한 남루만이 두드러진다. 고기에 대한 집요한 응시를 밑그림으로 삼았다. 정육점의 저울추에 걸리는 것이 당대 사람들의 육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신이 해체되어 고기처럼 붉은 불빛 아래 걸려 있다. 그걸 응시하는 건 저울추에 걸린 자신이라는 것! 너무 끔찍한 고문실 같은 풍경이다. 정육점에서 한 극점을 끌어낸 시인이 기실 가장 맑은 영혼의 정신을 가졌기에 가능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기를 씹을 때 마다 모악산 박남준의 정육점을 가끔은 기억해야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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