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국숫집을 시작한 서문시장 동산상가 '할매집' 김숙연(66)씨의 젊음은 국수를 말아내다가 지나가버렸다. 그의 가냘픈 어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한 포대의 밀가루를 국수로 밀어낸다. 국숫집 32년. 그간 국수로 민 밀가루는 자그마치 1만2천여포대에 달한다. 한 해 국물 맛을 위해 사용하는 멸치는 600상자에 이른다.
"처음에 이 골목에는 옆집이랑 우리 집밖엔 없었어. 그 때는 국수 한 그릇에 700원이었지."
칼국수 가격은 세월 따라 3천원으로 올랐고 서문시장 현대화로 아케이드가 설치되는 등 여건이 좋아졌지만 할머니는 '옛날이 좋았다'고 회상한다.
"20, 30년 전엔 넝마주이도 많았고 양아치, 건달도 수시로 찾아와 고생이 말도 못했어. 그래도 그때는 어려움도 같이 나누고 정이 있어 사람 사는 것 같았지. 요샌 너무 메말랐어." 김 할머니의 일과는 오전 4시 30분쯤 시작된다. 오전 6시면 시장으로 나와 하루 장사를 준비한다. 오후 7시 시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최소 100그릇 이상의 국수를 말아낸다.
"국수 밀어야지, 하루 종일 서 있어야지, 허리, 어깨, 무릎 성한 곳이 없어. 그래도 건강이 닿는데 까진 직접 해야지."
'맛의 비결 좀 가르쳐 달라'고 조르자 '딸도 모르는 나만의 비법'이라고 못 박는다. 3년 전부터 가업을 잇고 있는 딸 역시 "엄마가 간장까지 다 만들어놓으시니, 나는 국수를 삶아내는 게 전부"란다.
할매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단골들이다. 25년 된 단골도 있단다.
'칼국수'잔치국수'수제비'등 국수만 취급한다고 쉽게 생각하면 오산. 사람마다 국수 먹는 취향도 다 다르다. 밀가루 냄새가 나는 설익은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푹 퍼진 것만 찾는 사람이 있다. 일일이 식성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단골들의 발걸음을 끄는 맛의 비법은 국수 장과 김치맛. 소면은 단가가 더 비싼 것을 쓰고, 시골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재료로 사용한다. 칼국수와 함께 나오는 김치는 새콤하게 적당히 익어 칼국수와 찰떡궁합이다. 김치도 매일같이 담가 여름에는 하루, 겨울에는 4, 5일 익혔다가 낸다.
"내가 뭐 잘하는 게 있나. 욕이나 잘하지." 무뚝뚝하게 말을 던지면서도 단골들에게 "아침엔 국수 말고 밥을 먹어야지" "아픈 건 좀 어때?" 속 깊은 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단골들이 이곳에서 먹는 것은 국수만이 아니다.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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