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달서구청, 전국 최초 다문화가정 전수조사 현장

처음엔 당황하다 결국 가정문제 상담까지…

▲ 대구 달서구청이 11일~21일 실시한 외국인 주민 전수조사에서 조사원들이 외국인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대구 달서구청이 11일~21일 실시한 외국인 주민 전수조사에서 조사원들이 외국인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꼬냐콩(계세요?), 꼬냐콩."

베트남 출신 조사원 윙테이홍상(26·여)씨가 조심스레 현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앳된 얼굴의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T(24)씨가 얼굴을 내밀었다. 낯선 이들의 방문에 당황하는 T씨에게 윙씨가 베트남어로 말을 건네자, 이내 안도하는 빛이 역력했다. T씨는 베트남어로 된 설문지에 정성스레 표기를 하기 시작했다. 임신 4개월이라는 T씨는 "한국에 온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한국이 많이 낯설다"며 "한국어 방문교사나 다른 베트남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처음으로 현장조사를 해보니=2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월성동 모 아파트 단지. 설문조사원 김옥숙(41·여)씨와 윙테이홍상씨가 월성동 일대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지도와 명단을 비교하며 전화를 걸고, 초인종을 누르기 바빴다.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조사원이 2인 1조를 이뤄 달서구 내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근로자, 유학생 등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를 했다.

달서구청은 이달 11일부터 21일까지 열흘간 결혼이주여성 1천200여명을 대상으로 생활 실태와 욕구 등에 대한 전수 조사를 벌였다. 다문화가정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현장 조사를 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설문지는 베트남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등 4개국어로 번역해 쉽게 설문에 응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외국인 여성들이 직접 다문화가정을 찾아다니며 설문조사를 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줄이고, 보다 충실한 설문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달서구청은 이 결과를 토대로,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들이 달서구 본동의 한 주택가로 향했다. 한참 동안 골목을 헤매던 두 사람이 한 다세대주택에 들어섰다. 그러나 주인이 오래 전 집을 비운 듯 현관문에는 도시가스 점검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김씨가 연락처와 함께 '우편함을 확인해 설문지를 작성해달라'는 내용의 메모지를 문에 붙였다. "메모지에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을 적으면 화를 내는 경우도 제법 있어요. 이웃들에게 드러내기 싫어하기 때문에 강하게 항의하는 경우도 있어요." 인근에 살고 있는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여성의 집으로 향했다. '달서구청에서 설문조사를 나왔다'는 말에 이 여성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가 '구청에서 다문화가정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된다'며 한참을 설득한 뒤에야 설문지를 받아들었다.

◆빈곤과 부적응에 시달리는 가정 많아=전화번호가 구청 신고 내용과 다르거나 해당 주소지에 아예 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찾아간 달서구 월암동의 한 결혼이주여성의 집은 철거된 지 오래였다. 이웃 주민은 "1년 전쯤 베트남에서 온 신부가 가출했고, 몇 달 뒤 가족들이 모두 이사를 가버리고 집은 철거됐다"고 했다. 윙테이홍상씨는 "이곳에 살던 여성을 복지관에서 만난 적이 있다"며 "그때도 '사는게 재미가 없다'며 도망가겠다는 심중을 내비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조사원이 방문하는 가정은 60~70가구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화목하게 사는 가정이 있는 반면, 극도의 빈곤과 부적응에 시달리는 이들도 적지않다. 한 조사원은 "시댁 등 가족들이 아예 외부 접촉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며 "결혼이주여성을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문전박대하는 일도 허다했다"고 했다. 특히 중국인이나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외부에 알려지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외모가 한국인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숨기며 사는 경우가 많은데 조사원이 방문하면 '왜 그런걸 들추려하느냐'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다는 것. 조사원들은 상담원이 되기도 한다. 외국인 여성을 위한 복지관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방문교사 소개, 이혼 등 가정 문제까지 상담을 해준다. 설문 조사원 류명화(40·여)씨는 "외국인 여성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애로점은 언어 소통 문제와 정보 부족"이라며 "집 안에 갇혀 외로움을 호소하거나 1시간 넘게 이혼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가출을 하면 어디로 가야하느냐'며 묻기도 했다"고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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