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읽는 것'과 '보는 것'

소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의 판매 부수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 소설은 3월 첫째 주에 17위로 처음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진입한 이래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3월 둘째 주에 11위, 4월 첫째 주에 6위, 4월 둘째 주에 4위, 4월 셋째 주에 3위, 4월 넷째 주에는 2위에 올라섰다. 13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코밑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5월 첫째 주까지 2위를 기록한 이 책은 5월 셋째 주 현재 4위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 이 소설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을 때 독자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2004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이 출간되고 6, 7년이 흐르는 동안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국내 개봉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소설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출판사는 2009년 판을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3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리더'가 개봉되면서 책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이 책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좋은 책이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좋은 책은 필연적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13주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은 잘 알려진 사람이다. 2, 3위를 오르내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시 국내에 두터운 팬 층을 가진 작가다. 이 책의 지은이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국내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6, 7년 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책이 갑자기 주목받은 데는 '영화 개봉' 이라는 호재가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대다수의 출판인들 역시 그렇게 보고 있다.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책이 잘 팔리는 현상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다만 영화산업의 발달과 함께 밀려난 활자작품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이 '영화'라는 점은 역설적이고 또한 아쉽다. 좋은 이야기(원작)를 가지지 못한 영상은 허약해서 살아남기 힘들고, 영상이라는 파트너를 만나지 못한 '원작'은 대중의 눈길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인 듯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더 리더'를 책으로도 읽고 영화로도 본 주변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책이 더 나았다"고 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솜씨 있는 연출, 훌륭한 영상에도 불구하고 그 상상력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가 느끼는 상상력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고 하더라도 '표현된 현실'이 사람의 상상력 범위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눈에 보이도록 표현되는 모든 것은 사람의 상상력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읽기'보다 '보기'에 치중하는 분위기, 스스로 상상하기보다, 남의 상상세계를 구경만 하려는 세태는 아쉽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힘이 필요한 시절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남이 묻는 말에만 '답'하려고 한다.

조두진(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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