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인 최정원(34·여)씨는 아이를 집에서 차로 20여분 이상 떨어진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아파트 단지내 어린이집은 정원이 다 찼고 인근 유명 국·공립 유치원은 대기순번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 최씨는 "아침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오후 3시 어린이집이 끝나면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번갈아가며 데리고 간다"며 "아이도 지치고 부모님 눈치가 보여 가시방석"이라고 하소연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요
자녀를 둔 '직장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가 않다는 점이다. 괜찮은 어린이집에 들어가려면 한 해 전부터 대기표를 받아야 하고 부모에게 맡기자니 죄스런 마음에다 양육을 둘러싼 갈등까지 불거지고 있다.
남편 벌이가 시원찮아 일자리를 구하려던 강모(32·여)씨는 아이를 맞길 곳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싼 곳을 찾으면 시설이 탐탁지 않고 그렇다고 월 60만~70만원씩 하는 비싼 보육비 부담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강씨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다지만 양육 문제만큼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며 "여성에게 고스란히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에서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고 했다.
이모(37)씨는 지난해부터 장모를 모셔 아이를 맡기고 있다. 한 달에 100만원을 주고 조선족 보모를 들였지만 잦은 병치레에 울고 보채기만 해 장모에게 딸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개별 가정의 문제로 놔둘 일 아니다
2008년 말 현재 대구 지역의 보육시설은 모두 1천426곳, 정원은 7만1천여명에 달하지만 현원(이용 아동수)는 5만6천400여명에 불과하다. 정원이 남아도니 숫자로만 봐서는 '아이 맡길 곳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이구동성 '맡길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시설과 인력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되다보니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민간 어린이집은 아직도 열악한 곳이 많아 믿을수가 없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보육시설은 대구 지역에 고작 29개(2천81명)에 불과해 매년 초에는 밤샘 줄서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설 보육시설보다 저렴한데다 시설과 프로그램 면에서관리가 잘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직장맘'에게 인기있는 직장 내 보육시설을 설치한 곳은 대구시청, 경북도청, 대구은행, 동산병원 등 고작 13곳에 불과하다. 현행 법규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 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무 시설 외에 직장 보육시설을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프뢰벨, 대교 등 일부 교육 관련 기업이 직장 보육시설을 설치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기업체는 외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개별 가정에 보육비를 지원하는 정책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공공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4·여·북구 태전동)씨는 "돈 20만원을 더 받는 것보다 직장 보육시설을 갖출 수 있게 지원을 해 달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이다. 한자녀더낳기운동연합 문차숙 대구본부장은 "육아 문제를 비용 지원으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과 정부, 각 가정이 모두 협조해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노력 없이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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