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박수칠 때 떠나자

필자의 집에는 삼대가 살고 있다. 그리하여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재미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 중에 할머니와 손녀의 팔씨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려 한다.

나이 차이가 정확히 70년이 나는 할머니와 손녀는 나이 뒷자리가 같다는 이유로 서로 동갑으로 생각하며 지낸다. 손녀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딸, 그리고 그 딸의 딸 등 온 가족이 모여서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그 중 하나가 팔씨름이었다.

그날도 가족 모두가 모여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와의 팔씨름에서 항상 이기고 있었다. 그날 역시 할머니는 손녀의 팔을 가볍게 넘어뜨렸다. 할머니한테 진 손녀는 씩씩거리면서 "다음번에는 꼭 이길 거야!"라고 말했다. 손녀와의 팔씨름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둔 할머니는 가족 모두에게 의외의 말씀을 하였다.

"나 이제 팔씨름 그만 하련다!"

한마디로 팔씨름 선수의 은퇴 선언이었다. 쑥쑥 커가는 손녀의 팔을 통해 전해져 오는 새로운 세대의 강해져 가는 힘을 느끼신 것 같다. 그 이후에 할머니는 손녀와 더 이상 팔씨름 놀이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손녀 앞에서 언제나 팔씨름을 이긴 할머니로 남게 되었다. 그 손녀가 할머니를 충분히 이길 나이가 되었을 때 이미 손녀는 할머니와 겨룰 만한 팔씨름에 욕심을 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은퇴 선언은 한 가정의 팔씨름에서뿐 아니라 한 나라의 천하장사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방송인인 강호동씨도 그렇다. 그는 한때 대단한 씨름 선수였다. 그가 등장했던 초창기부터 그랬다. 최고가 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하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오르게 되면 그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하장사 강호동씨는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또 다른 길을 개척하기 위해 나섰다. 이런 용기가 오늘날 그를 칭찬받는 MC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MC가 아닌 다른 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성공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나 아니면 안 된다고, 내가 적격자라고 여기는 그 일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 아니면 어떤 기대를 여전히 놓지 못하고서, 혹은 아직도 가느다란 희망에 우리의 비대해진 몸을 의지하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이렇게 미련스럽게 미련을 떨다가 하던 일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놓쳐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 역시 늦지 않았음을 상기하자. 늦었다고 하는 그때가 앞으로 올 그 어느 날보다도 빠른 시기임을! 이미 늦어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질 때가 새로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적기가 아닌가 한다.

만약에 우리가 어느 정점에 서 있다면 우리는 내려오는 길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최고점에서 더 머무르고 싶어질 때 한번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여전히 어떤 일을 잘 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아직 정상에 서 있다고 느낄 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할 필요가 아직 없을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를 한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어느 시인은 우리의 뒤태를 결코 슬프지 않다고 읊고 있는 것 같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하는 이를 남기고 떠나가든, 자신의 청춘을 뒤로하고 떠나가든, 잘나가던 과거와 작별하고 떠나가든 우리에게는 우리의 새로움을 향해, 우리의 발전된 모습을 향해 떠나야 할 때가 가끔씩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황금기에서 우리가 내려갈 길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는 성현의 말씀도 있지 않은가. 손녀와의 팔씨름에서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할머니는 손녀에게 언제까지나 빛나는 챔피언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자, 우리도 박수 칠 때 떠나보자!

정막래 교수 (계명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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