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의 도시'라는 등식을 낳은 부산국제영화제(올해 14회째)도 시작은 초라했다. 영화팬들은 '이게 가능할까'라며 무관심했고, 첫 회 예산은 22억원에 불과했다. 그런 영화제의 성공 뒤에는 김동호(71·집행위원장)라는 걸출한 '야전장교'가 있다. "세계 영화인들이 부산에 오면 아시아 영화와 젊은 감독들을 발견할 수 있고, 또 아시아 감독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이 부산에서 보여져야 세계로 뻗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됐다"는 그의 평가는 호사스런 것이 아니다.
올해 3회째를 맞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하 딤프)의 배성혁(44) 집행위원장의 지향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는 뮤지컬 작품들을 대구에 오면 만날 수 있고, 대구를 통해 전 세계 뮤지컬 시장에 데뷔할 수 있는 축제로 만들겠다"는 그의 생각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그것과 닮아 있다. 5일 딤프 사무실(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내)에서 그를 만나 올해 딤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국내 공연계가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습니다. 올해 딤프의 객석점유율이 지난해(평균 60%)보다 낮아질 것으로 걱정되지만, 딤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올해 승부수를 띄워야 합니다." 창작 뮤지컬의 산실을 표방한 만큼 관객이 덜 찾을 수 있지만, 창작 뮤지컬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사는 흥행성이 보장된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만, 딤프에서는 작품성·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키우는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창작지원작 중 한 작품이 내년 9월 뉴욕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통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올해 딤프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 올해 5개 창작 지원작을 뽑는데 46개 작품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딤프에서 배출된 작품들은 국내외에 딤프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딤프 참가작인 '마이 스케어리 걸'과 '시간에'는 서울 무대에서 활약 중이고, 중국작인 '버터플라이즈'는 딤프 폐막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예정이다.
뮤지컬의 주 소비층인 청년층의 관심이 높아진 것 역시 청신호다. 올해 '대학생 뮤지컬 페스티벌' 부문에는 해외 2개 대학을 포함해 총 9개 대학팀의 작품이 선보인다. 기성 작품들 못잖은 뛰어난 작품성이 돋보인다는 것. 5일 '기적의 소녀 잔다르크'로 참가하는 나고야 대학 관계자를 만난 배 위원장은 "'국제'라는 타이틀이 우리에겐 버겁게 느껴지지만 밖에서는 그렇게 보질 않고 있다. 아시아 유일의 뮤지컬 축제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배 위원장은 딤프가 안고 있는 숙제로 적은 예산과 관광 상품성 개발을 꼽았다. '최단 기간에 최고 성공한 대회'라는 평가 이면에는 보완돼야 할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예산이 늘어나 딤프 사무국에 상근 직원이 확보돼야 하고, 동성로 축제나 대구시티투어 등과 연계, 딤프 기간 동안 외지 관광객들을 대구에 붙들어 둘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시장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외국에선 한 편 만드는 데 수년이 걸리고 제작사도 많은 투자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적게 투자하고 빨리 만들어서 돈 벌 궁리만 합니다. 한 해 수십편의 창작 뮤지컬이 쏟아지지만, 제대로 된 뮤지컬 음악 하나 없어요. 뮤지컬 시장이 거품이니 도박이니 하는 것은 이런 조급함 때문입니다." 그는 딤프가 이런 척박한 국내 뮤지컬 시장의 대안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위원장은 벌써부터 내년 딤프를 꿈꾸고 있다. "3회 동안의 개막작이 모두 외국 창작 뮤지컬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우리 작품으로 개막식을 장식하고,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공연하고 싶습니다." 4회째의 개막작은 수변 야외무대로 만들겠다는 것.
그는 끝으로 대구 뮤지컬 전용관 계획의 부결에 대한 아쉬움도 잊지 않았다. "뮤지컬 전용관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창작 뮤지컬이 나옵니다. 우리보다 한 발 늦은 부산시가 센텀시티에 뮤지컬 전용관을 유치했다는 사실은 딤프의 큰 위기입니다. 시의원님들이 일본의 뮤지컬 전용관을 한번만 견학한다면 그 필요성을 절감하실 겁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TIP= '7천원짜리 뮤지컬 표를 잡아라.'
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극장 영화표 값으로 뮤지컬 보기를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웠다.
딤프 측은 뮤지컬 팬들을 위해 다양한 할인 패키지를 마련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7천원짜리 뮤지컬 표다. 이 표를 구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우선 12일 오후 5시부터 문을 여는 대구백화점 앞 티켓박스를 찾는 것이 좋다. 딤프 측에서는 매 작품 R석의 20%를 7천원짜리로 배정해 놨다. '당일 남은 표를 30~50% 할인해주는' 브로드웨이식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 길게 줄을 서는 수고를 감수해야 할 듯. 또 인터넷 딤프(dimf.or.kr) 예매사이트에 접속하면 이벤트 코너에서 7천원짜리 표를 찾을 수 있다. 문의 053)622-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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