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정호(65)는 인터뷰 내내 기자에게 이렇게 묻는 듯했다. '과연 젊음은 무엇이고, 시대정신은 무엇이냐?' 35년간 작가와 교육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치열하게 붓을 휘둘렀던 작가는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와 소재를 갈구하면서 '젊음'이 추구해야 할 바를 직접 보여주었고,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물음을 통해 '시대정신'을 드러냈다.
대구를 대표하는 작가 권정호의 35년간 예술세계를 아우르는 전시회가 수성아트피아 초대로 열린다. 전시 제목은 '죽음의 행복'(A Happiness of Death). 널다란 전시장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빼곡히 늘어선 작품들은 마치 철장에 갇힌 맹수 마냥 울부짖는 듯 했다. 1980년대 초기 작품에는 강렬한 색채 속에 도깨비불이 캔버스를 누비고 있다. '사운드' 연작을 통해 소리를 캔버스 위에 잡아내는 작업에 열중하던 작가는 다시 변신을 시도했다. 붉고 푸른 기운이 젊은 시절의 분노와 격정을 대변하던 시기를 지나 권정호는 마치 동양의 선(禪)을 갈파하는 듯 검은 선과 점들의 잇따른 반복을 담은 작품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좋은 반응을 받는 소재와 주제에 머무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작가는 "그것은 이미 작가로서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고 답했다.
권정호는 죽음 대신 젊음과 열정을 택했으며, 친절해지기 시작했다. 형상을 파악하기 힘든 표현주의적 세계를 벗어나 이미지를 담기 시작했다. 보다 직설적인 화법을 택한 것.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지하철 참사 등에서 부정(否定)하고 불합리적인 현상들을 신랄하게 담아냈다. 종이를 잘게 찢어 반죽처럼 만든 뒤 캔버스 위에 붙이는 작업을 통해 색다른 질감을 창조해 냈다. "불만이 많아서 매일신문도 많이 찢어 썼지"라고 웃어 보였다. 이들 중에는 '인간은 남의 탓으로 전가하고 싶어해', '기동대' 등 강한 사회 의식을 담은 작품도 많다.
그의 작품에서 '해골' 연작도 빼놓을 수 없다. 해골 이미지에 대해 작가는 어느 한쪽으로 읽히기를 거부한다. 흔히 죽음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해골은 작가에게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모두 겪어야 할 죽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생명과 직결된 매개체다. "마치 영화 '킬링필드'에 등장하는 해골더미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해골을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부족에게는 바로 생명일 수도 있습니다." 대구대 회화과 교수인 권정호의 이번 전시에는 설치 및 영상 작품과 함께 대형 회화작품 20여점이 전시(10~28일)된다. 개막은 12일 오후 6시. 053)666-3300.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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