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여담女談] 밤 데이트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중년 부부들을 괴롭히고 있다?' 신문에 실린 제목이다. 올해로 결혼 18년차인 오바마 부부가 다정하게 밤 데이트(date night)를 즐기면서 중년 커플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는 모양이다. 파리를 방문한 미국 대통령 부부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만찬을 거절하고 나란히 센강변을 거닐었고 지난달에는 대선 때의 약속이라면서 뉴욕의 맨해튼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이걸 본 미국의 아내들은 '저렇게 바쁜 대통령도 부인을 위해 시간을 내는데 당신은 무엇하느냐'며 바가지를 긁는 바람에 부부싸움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습다. 사람 사는 모습이 미국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해서다. 결혼 20년이 다 된 부부가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바쁘다는 남편과 늦은 밤 강변을 거닐거나 공연을 보며 데이트를 즐긴다는 것은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질투가 날 만하다. 애써 위안을 삼자면 중년 부부라도 얼마든지 서로에게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나 할까.

이참에 우리도 누구처럼 멋지게 밤 데이트를 한번 해보자. 센강변 대신 신천의 밤을 거닐어도 좋겠고 맨해튼의 뮤지컬 대신 15일부터 열리는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로 멋을 부려봐도 괜찮겠다. 마침 계절도 밤 데이트 하기에 더없이 좋다.

대구에는 밤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 봉산문화거리 초입의 중구문화회관 2층 커피숍에서 바라보는 대구의 저녁 노을은 멋지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이어서 감흥은 더 크다. 수성아트피아 앞 광장에서 바라보는 대구의 밤은 쓸쓸하다. 그래서 더 정겹다. 수성못이나 월광수변공원의 밤 풍경은 진하다 못해 달콤하다. 이밖에도 밤이 아름다운 커피숍과 레스토랑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대구의 밤은 대부분 갇혀 있다. 모두들 문 닫고 안에서 즐긴다. 일렁이는 바람과 맑은 달빛을 즐길 수 있는 그런 탁 트인 야외 공간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천의 밤 풍경은 아쉽다. 신천의 밤은 아름다우나 낭만적인 요소가 살짝 빠져 있다. 늦은 밤 부부가 '자판기 커피' 한잔 들고 데이트하기엔 어딘가 불편하다. 운동시설만큼이나 낭만이 입혀진다면 센강변 못지 않은 멋진 데이트 코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공연장 주변 광장에도 커플들을 위한 공간이 어디에쯤 있었으면 한다. 공연을 보러나온 부부를 위한 커플 벤치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공연의 여운뿐 아니라 추억을 서비스하는 센스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너무 덥지 않은 지금, 밤 데이트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마침 공연도 풍성하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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