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병수의 쿠바여행] (중)음악은 언제나 춤과 함께

쿠바에서 8일 동안의 일정 중 나흘을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녔다. 굳이 체의 흉내를 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나라는 교통 시스템과 질서가 잘 잡혀 있어 오토바이 여행에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덕분에 하루에도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뀐다는 유명한 말레꼰 해안을 여러 번 왕래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석양이 질 때 말레꼰의 풍경은 방금 만난 연인들도 서로 입을 맞출 만큼 로맨틱하다. 쿠바를 오면서 하바나만이라도 제대로 보자는 생각으로 오토바이를 빌려 관광책자에 올라 있는 관광지는 거의 다 섭렵했다.

그곳에는 구석구석에 개가 많다. 개들은 사납지 않았고, 인간들과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쿠바의 골목길 여행 중 개 배설물을 완벽하게 피해간 여행객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토바이 덕분에 한 번도 폭탄(?)을 밟지 않았다. 야외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종종 개가 식탁 밑을 들락거려 놀라기도 한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를 얻은 장소로 유명한 코히마르 어촌 마을. 현지인들과 같이 낚시를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맥주 10병을 사서 한턱 내면서 어울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가지고 온 작은 녹음기의 리듬에 맞춰 하나 둘씩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처럼 쿠바에서의 음악은 항상 춤과 함께한다. 가슴과 허리 사이즈가 같아 보이는 40세 가량의 여자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잡아끌면서 살사 댄스를 추자고 한다. 내가 춤을 추고, 못 추고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의 금방 먹은 맥주와 고기 냄새가 내 콧가를 확 스치면서 하마터면 토할뻔 했다. 5분쯤 끌고 다니다가 나를 놓아줬다. 쿠바에는 쭉쭉 빵빵한 아가씨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헤밍웨이가 생전에 매일 출근하다시피한 라보 테꾸이타 식당에서 큰 덩치의 흑인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헤밍웨이 스타일의 모히토를 마시면서 수많은 낙서로 얼룩진 벽에 흔적도 남겼다. 1, 2층 구조의 식당은 빈자리가 거의 없다. 모히토 한잔에 5달러 정도다. 바에 앉아서 제조 과정을 보니 100개 이상 되는 맥주컵 모양의 유리컵을 두줄로 나열해 놓고, 럼주'소다 등을 차례로 따르고, 설탕 한 스푼씩을 넣고 난 후 민트 잎을 살짝 찧어 넣는다.

'쿠바 인구의 반은 체와 헤밍웨이가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두 사람은 모두 쿠바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쿠바에서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진 중 하나인 체의 얼굴을 새겨 놓은 큰 건물(내부성 건물임)이 있는 혁명 광장은 10번 이상은 간 듯하다. 관광 필수 코스인 이곳은 쿠바의 국민 영웅인 호세 마르띠의 기념탑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고, 맞은편 10여층의 방송국 건물 전면에는 피델 상반신이 나온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내가 이곳을 여러 번 찾은 이유는 내륙 쪽으로 여행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지점인데다 바로 옆 6층 건물 라운지에 자리한 '물 좋은' 깐단테라는 나이트클럽 때문이다. 이 클럽에서는 자정이 되면 조그만 무대 위에서 공연과 각종 쇼가 벌어진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어 눈에 잘 띈 때문인지 사회자는 나를 불러내서 현지인 여성과 즉석에서 짝짓기를 해주며 유치하면서도 조금은 곤란한 상황을 연출토록 했다. 매번 무대에 불러 올릴 때마다 사회자는 착 달라붙은 내복 같은 하얀색 얇은 바지와 터질 듯한 가슴을 겨우 감추는 손바닥 2개 크기만한 티셔츠의 글래머의 여성을 불러내 짝을 맺어 주었다.

올드 하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까사 드라 뮤지카라는 나이트클럽은 거의 살사(카지노라고 함) 고수들만 모이는 곳 같았고, 유명한 부예나비스타 쇼설클럽의 가장 완벽한 흉내를 낸다는 팀이 공연하는 나시오날 호텔은 미리 예약하고 다음 날 공연을 봐야 했다.

올드 하바나에서 엘 모로요새로 가려면 먼 육지 길을 돌아가던지, 아니면 바로 300m의 해저터널을 이용하면 된다. 터널을 벗어날 무렵 경찰에 잡히고서는 해저터널이 자동차 전용 도로라는 것을 알았다. 헬멧도 제대로 쓰고, 속도도 50㎞를 넘지 않아 당당하게 운전면허증과 오토바이 렌탈 계약서 등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는 달리는 버스를 가리키는 듯한 손짓을 했다.

두 명의 경찰관의 씩 웃는 모습에 내가 처한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간 어린이용 양말과 볼펜을 꺼내 건넸더니 한사코 마다해 다시 가방 안에 쑤셔 넣고 10여분가량 기다리니 버스가 한 대 와서 선다. 오래돼 보이는 버스의 중간 문이 열리고, 안을 보니 직감적으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버스 안의 구조는 의자는 하나도 없고, 오토바이 2대와 자전거 3대, 그리고 거의가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경찰과 버스 안 승객들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겨우 버스에 싣고 내가 온 길을 되돌아가 오토바이를 내려놓고, 그 대가로 5달러 정도의 운임을 지불했다. 진입하는 곳에 경찰관을 배치해 못 들어가도록 통제하면 될 일을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나 같은 관광객들을 위해(?) 운행하는 버스의 수입도 만만찮을 거라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나는 그 후로도 일방통행과 신호 위반으로 경찰에게 두 번이나 더 잡혔으며 그 위기 상황을 잘 마무리하고 난 뒤 조그마한 성의를 표시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hbs498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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