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廣隆寺(광륭사)란 사찰엔 소나무로 만든 미륵보살상이 있다. 일본 국보 제1호인 이 작품은 우리나라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조각상을 두고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표정"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란 책을 쓴 전영우 씨는 이 미륵보살상을 경북 울진의 춘양목으로 만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조각사' 저자인 문명대 교수 역시 우리 춘양목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란 주장을 폈다. 우리 소나무인 춘양목의 우수성을 방증해주는 본보기란 생각이 든다.
소나무만큼 우리 민족과 고락을 같이한 나무도 드물다.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나무와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끈을 맺은 게 한민족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잡인의 출입을 금하려고 솔가지를 끼워 금줄을 쳤다. 땔감으로 때는 솔가지 연기를 맡으면서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크고, 소나무에서 나온 생활도구나 농기구를 썼다. 송편과 같은 소나무와 연관 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다 세상을 떠나면 송판으로 만든 관에 들어 뒷산 솔밭에 묻혔다.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우리나라에 출현한 소나무는 그 당시부터 한반도 넓은 지역에 분포했다. 우리 조상이 이 땅에 들어온 게 100만 년 전임을 감안하면 소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더 터줏대감인 셈이다. 우리 산림의 60%를 차지했던 소나무가 병충해와 산불, 수종 갱신으로 급격하게 줄어 요즘엔 산림 면적의 25%에 불과하다. 100년 뒤에는 이 땅에서 아예 사라질 것이란 충격적인 보고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진작가 배병우 씨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선물했다. 이 책에는 눈 덮인 대관령의 소나무를 찍은 사진 등이 실려 있다. 영국 팝스타 엘튼 존이 금강산 소나무 대작 사진을 구입할 정도로 배 씨는 소나무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추세대로 소나무가 사라진다면 나중에 오바마 후손들이 한국을 찾아와 사진 속 소나무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무엇을 보여줄지 걱정스럽다. 아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란 애국가 2절 가사도 바꿔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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