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수박같이 두렷한 님아/무명씨

수박같이 두렷한 님아

무명씨

수박같이 두렷한 님아 참외같이 단 말씀 마소

가지가지 하시는 말이 말마다 왼말이로다

구시월 씨동아같이 속 성긴 말 말으시소.

영농기술이 발달해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과채류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름은 아무래도 수박과 참외 같은 과채류가 제 맛을 내는 계절이다. 수박·참외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군침이 돌고, 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이 작품은 작자가 전해지지 않지만, '청구영언' 육당본을 비롯해 12권의 가집에 전해진다. 좁혀 읽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넓히면 세상을 향한 쓴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시의 여러 기법을 동원한 것을 보면 글깨나 읽은 사람이 쓴 것이 분명하다. 수박의 모양, 참외의 맛, '가지'의 동음이의어 활용, 동아의 속성을 작품 속에 끌어들여 말맛을 한껏 느끼게 한다.

현대어로 풀어 읽으면 '수박같이 둥글둥글 복스러운 얼굴을 한 님아 참외처럼 달콤한 말을 하지나 마소/ 가지가지 하는 말마다 하나같이 날 속이는 거짓말이로다/ 구시월 가을의 씨받이 동아처럼 속 빈 소리 하지나 마소'가 된다.

수박같이 복스러운 얼굴을 한 님이 거짓말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니 제발 그 실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수박·참외 가지는 익히 아는 과채류이지만 동아가 낯설다. '동아'는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성 식물로 여름엔 노란 종모양의 꽃이 피고 열매는 긴 타원형이다. 과육과 종자는 약용으로 쓰는데 맛이 좋다. 씨동아란 씨를 받기 위해 따먹지 않고 키우는 것이다.

이 시조를 이 여름에 읽으면 한결 맛이 더할 것 같다. 세상이 뒤숭숭하여 무척 말이 많은 세상이다. TV에 비친 수박같이 인물 좋은 사람들이 참외같이 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왼말인가 오른(?)말인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이 말 들으면 그런 것 같고, 저 말 들으면 또 그런 것 같지만, 거짓말인지 참말인지는 국민 각자가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정치가 말로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이 너무나 횡행하고 있다. 정치권의 사람들 이 시조를 읽으며 제발 '씨동아같이 속 성긴 말 좀 말으시소…'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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