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영애의 고전음악의 향기] 운명의 두 사람, 비제와 요한 시트라우스 2세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쌍둥이 형제나 자매의 서로 다른 운명적인 삶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드라마들이 더러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의 친구가 너무나 뜻밖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운명이 각자의 삶을 모두 다르게 예정해 놓은 듯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약 200여년 전 유럽에서 두 위대한 작곡가가 연대는 다르지만 같은 날 태어나 '작곡가'로서의 삶을 다하고 똑같은 날 사망한 일이 있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 중의 하나인 '카르멘'의 작곡가, 프랑스의 조르쥬 비제(Geroges Bizet· 1838년 10월 25일~1875년 6월 3일)와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시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1825년 10월 25일~1899년 6월 3일)가 바로 생일과 기일이 똑같은 작곡가이다. 물론 연대가 다르니까 생일이야 같을 수 있다고 쉽게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두 작곡가는 이외에도 많은 공통점이 있기에 더욱 운명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데…. 비제와 요한 시트라우스 2세는 두 사람 모두 다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비제는 '카르멘'과 '진주 조개잡이' 그리고 '아를르의 여인' 등으로, 요한 시트라우스 2세는 '집시남작' '박쥐' 등의 작품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잊혀지지 않는 작곡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요한 시트라우스 2세가 왈츠의 왕이라 불리거나 비엔나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의 최다 연주곡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는 이유는 바로 그의 아버지,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시트라우스 1세와 가족들 때문이기도 하다. 비제 역시 음악교육을 부모에게서 시작할 정도로 아버지는 성악교사,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던 음악가족이었다.

즉 이들의 음악은 스스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난데다 더욱 철저하게 다져진 음악교육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어갔던 예정된 길이었던 것이다. 비제와 시트라우스 두 사람이 비슷한 연배로 똑같은 시대의 영광을 함께 누리지는 않았지만 (시트라우스가 13년 연상) 시트라우스의 첫 번째 오페레타 성공작 '박쥐'는 1874년 작곡했으며, 비제 최고의 걸작 '카르멘'은 1875년 비제가 죽기 3개월전에 완성했다.

두 사람이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킨 연대도 매우 비슷하다. 시트라우스는 자신의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위대한 걸작 오페레타를 썼지만, 비제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카르멘'이 오늘날 이처럼 인기있는 오페라가 될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뜬 것이다.

클래식 음악 역사 속을 들여다 보면 어떤 위대한 한 작곡가가 오랜 시간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 수백 년의 음악 기법을 하나의 교과서로 정리해 두어 오늘날까지 널리 유용하게 사용되는 업적을 남겼으나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작곡가도 있다. 동시대에 매우 경쟁적인 관계로 서로에게 자극을 주기도 하고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경우도 더러는 있었다.

그렇지만 조르쥬 비제와 요한 시트라우스 2세처럼 나이가 다르면서 같은 날 태어나 같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명성을 얻은 후 같은 날 세상을 뜬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혹시 이 두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맺어진 쌍둥이 형제가 이 세상을 찾아올 때 길을 잘못 들었던 건 아닐까….

최영애(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