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여담女談] 소문을 즐기는 도시

2005년 8월. 바그다드에서 이슬람 신자 천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로에게 짓밟혔거나 떠밀려서 일어난 참사였다. 어이없는 죽음의 시작은 티그리스 강 근처의 사원을 걸어가던 수십만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살 특공대'가 있다는 수군거림에서 비롯됐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집단공황상태를 만들었다. 한꺼번에 위험을 피해 달리다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자살 특공대는 없었다.

소문은 이처럼 무섭다. 그것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려지기도 전에 무차별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간다. 또 그것은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에 의해 조그맣게 시작되다가 시간을 삼키며 혼자 저절로 자라 거대한 괴물로 변한다. 이때쯤이면 소문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당사자가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대도 소문의 엄청난 덩치에 가려 진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소문은 항상 위험하기까지하다. 소문은 '왜곡'으로 뼈대가 만들어지고 '재미'로 살이 채워지는 유통과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에 관한 소문은 더욱 그렇다. 대개 개인에 관한 소문은 좋은 것보다 험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억측과 질투로 버무린 험담은 피리처럼 불수록 재미를 더하고 그것은 극적인 왜곡과 과장의 단계를 거치면서 확대재생산된다. 설령 좋은 소문이라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구에 몇몇 여성을 묶어 깎아내리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소문의 주인공들은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여성들이다. 험담의 이유는 주관적이며 아주 피상적이다. '잘난 척하며 티를 낸다'는 것이다. 다분히 질투가 섞여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설령 당사자의 처신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렇게 희화적으로 엮을 일은 아닌 듯하다.

사실 대구만큼 사람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도 드물다. 소문을 즐기는 도시같다. 이런 분위기가 걱정스러운 이유는 소문이라는 것이 불안정하고 덜 성숙한 감정을 자양분으로 자라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편견이나 두려움, 질투, 시기심, 공격적인 감정들로 한결같이 미성숙하고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소문을 즐기는 사회는 불안정하고 덜 여문 사회다. 밖으로 열리기보다는 닫혀 있고 스스로 좁아지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더욱이 그곳에서는 누구나 소문의 희생자가 될 수 있고 공범이 될 수밖에 없다.

소문을 즐기는 사회는 시골 빨래터와 같은 수준의 사회다. 거기에는 변화의 힘도, 내일의 희망도 찾을 수 없다. 생각을 크게 바깥으로 돌려야겠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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